불법 파견만 수천 명···윤갑한·하언태 전 사장 2000만~3000만원 ‘벌금형’
적어도 ‘미필적 고의’ 인정···법률 오인에 ‘정당한 사유’도 인정 안 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 사진=연합뉴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정문.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고용노동부장관 허가없이 근로자파견을 제공받은 혐의로 기소된 현대자동차와 전 사장 2명에게 유죄 판결이 선고됐다. 20년 불법파견에 대한 최초의 형사처벌이자 법률의 착오가 아닌 그 불법파견의 ‘고의’를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울산지법 형사6단독 최희동 판사는 지난 4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갑한 전 사장(2012~2018년)과 하언태 전 사장(2018년~2021년)에게 각각 벌금 3000만원, 벌금 2000만원을 선고했다. 현대자동차 법인에게도 벌금 3000만원이 선고됐다.

두 사람은 회사 대표이사와 울산공장장을 지내면서 사내하청업체로부터 노동자 수천명을 파견받아 직접 생산 공정에서 일하도록 한 혐의로 기소됐다.

파견법에 따르면 고용노동부장관의 허가 없이는 근로자파견 사업자로부터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아서는 안 되고, 근로자파견 사업자로부터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를 대상으로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아서는 안 된다.

피고인들은 재판과정에서 근로자파견에 대한 고의가 없었으며, 이 같은 행위가 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오인한 사정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피고인들이 불법파견에 대한 노동자들의 문제제기와 소송경과 등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사내협력업체와의 관계가 계약형식임에도 실질적으로는 노동력을 제공하고 그 대가를 받는 것에 다름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2004년 불법파견 문제가 노조를 통해 처음 제기되고 노동청에 진정이 제기된 점 ▲2005년 노동청이 피고인을 파견법위반으로 경찰에 고발한 점 ▲비정규직 노조가 수차례 불법파견을 해소하기 위한 단체교섭을 요청한 점 ▲2005년 노동자 파업과 근로자 해고 사태 ▲해고된 근로자들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 ▲노동청의 청구 기각과 이어진 행정소송 ▲불법 근로자파견을 인정한 2010년 대법원 판결 등을 그 근거로 삼았다.

이밖에도 ▲울산공장장은 현대차의 국내 생산과 관련된 울산, 전주, 아산공장의 업무 및 각 공장의 사내 협력업체를 총괄하는 지위에 있는 점 ▲울산공장장이 전주와 아산공장의 사내 협력업체의 도급계약 등을 총괄하고 울산공장장의 결재가 필수인 점 ▲울산공장장이 사내 협력업체 계약 및 해지 현황을 지속적으로 보고받아온 것으로 보이는 점 ▲대법원 판결 이후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정규직 요구가 지속적으로 있어왔고 이에 대한 보고를 피고인들이 꾸준히 받아온 점 ▲피고인들이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통한 자동차 생산 공정에 사내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투입된다는 점에 관해 인식했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각 사내협력업체 근로자들의 근로관계가 파견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해당할 수 있음을 적어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도 이를 용인한 채 근로자파견 관계를 맺거나 지속적으로 유지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법률의 착오’에 대한 주장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경우 단순한 법률의 부지에 해당할 뿐만 아니라, 착오를 회피하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없어 피고인들의 행위가 죄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 데에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평가하기도 어렵다”고 꼬집었다.

형법은 자기의 행위가 법령에 의하여 죄가 되지 아니하는 것으로 오인한 행위는 그 오인에 ‘정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한하여 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는데, 법원은 피고인들에게 죄가 되지 않는다고 믿었을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고는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파견법에 제조업의 핵심 업무인 직접생산공정업무의 적정한 운영을 기하고 근로자에 대한 직접고용 증진 및 적정임금 지급을 보장하기 위해 제조업의 직접생산공정업무에 대한 근로자파견을 전면 금지하고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면서 “이 사건처럼 외형상 사내도급의 형태를 띠면서 실질적으로는 근로자파견의 역무를 제공받는 불법파견이 만연하게 되면 더 많은 수의 근로자들이 열악한 근로조건과 고용불안에 내몰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피고인들은 무허가 사업자로부터 직접생산공정업무 등 파견대상이 아닌 업무에 관해 파견역무를 제공받았는데 파견법위반의 정도가 가볍지 않다”며 “파견근로자와 파견업체가 다수이고, 파견기간 역시 장기간인 점, 피고인들은 현대차의 각 공장 책임자로서 불법파견 관계의 형성이나 유지에 상당한 책임이 있어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하는 점, 불법파견에 따른 이익의 귀속자인 현다차 역시 엄중한 책임을 지는 것이 마땅한 점 등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다만 재판부는 회사가 전국금속노조와 협의를 거쳐 2012년부터 2020년까지 수천명의 사내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을 신규 채용하거나 채용 절차를 진행하는 등 불법파견 해소에 일부 노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유리한 양형 요소로 고려했다.

◇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솜방망이 처벌” 비판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유죄 판결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솜방방이 처벌을 내렸다고 비판한다.

비정규직 노조는 성명을 통해 “사법부의 판결 지연과 솜방망이 처벌은 자본의 불법파견 범죄행위를 비호하는 것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며 “20년간 불법파견을 통해 얻은 수익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현대차에 너무나 관대한 처사”라고 비판했다.

이어 “수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구속과 수배, 징계와 해고로 고통받았는데 8000만원 벌금은 합당한 죗값도 아니고 동일 범죄를 예방하는데도 역할을 할 수 없다”며 “주 고발대상이었던 최고책임자 정몽구 회장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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