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사 패소 시 정부가 약제비 환수···약가인하 제약사, 향후 집행정지 신청 신중 검토할 듯
오리지널사 불리, 제네릭사 유리 전망도···업계 “윤 대통령 거부권 가능성 낮아, 자생력 키워야”

[시사저널e=이상구 의약전문기자] 제약업계가 일명 ‘약제비 환수법’으로 불리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 국회 통과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향후 정부가 약가인하를 시행할 경우 해당 제약사는 집행정지 신청에 신중을 기할 전망이다. 단, 개정안은 제네릭(복제약) 의약품을 제조하는 중소제약사들에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2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이 지난 2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의료계에서 논란이 일었던 간호법 개정안과 의료법 개정안도 이날 국회를 통과했지만 제약업계 입장에서 건보법 개정안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건보법 개정안 핵심은 ‘보험약제 행정쟁송 결과에 따른 환수·환급 제도’ 도입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특정 의약품의 약가인하 행정처분을 진행한 후 해당 제약사가 법원에 행정처분 취소 소송과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을 때 이같은 내용이 작동한다. 이에 이번 건보법 개정안은 약제비 환수법이라는 별칭으로 불리운다.

우선 법원이 제약사가 신청한 집행정지를 수용하고 행정처분 취소소송에서 제약사가 패소했을 경우 정부는 집행정지 수용 시점부터 제약사 패소 시점까지 제약사에게 지급한 약가 다시 말해 인하되지 않은 기존 약가를 소급계산해 약제비를 환수하게 된다. 반면 법원이 제약사의 약가인하 집행정지 신청을 수용하지 않고 처분 취소소송에서 제약사가 승소했을 때는 정부가 약가인하 시점부터 승소 때까지 인하한 약가를 소급계산해 제약사에 환급해야 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의약품 약가인하 결정이 부당하다고 법원이 판단했다면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약가피해를 정부가 해당 업체에 돌려줘야 한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건보법 개정안 취지는 최근 10여년 간 정부의 약가인하 행정처분에 대해 제약사가 제기한 취소소송 급증으로 분석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2011년부터 2022년까지 64건의 약가인하 취소소송이 제기된 것으로 파악된다”며 “소송을 대리하는 로펌만 배부르게 하는 것이 약가소송이란 자조적 말이 있을 정도로 업계에 보편화된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이번 건보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인해 제약업계는 여파가 크다는 점을 강조하며 대책 마련에 분주하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당초 국회 심의 과정에서 업계가 건보법에 우려를 표명했지만 결국 통과된 상황”이라며 “사실상 개정안 시행을 막을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건보법 개정안의 남은 절차는 정부 공포 뿐이다. 개정안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된다. 최근 논란이 있었던 간호법과 의료법에 대해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지만 상대적으로 건보법은 거부권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다. 

이에 향후 건보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정부로부터 약가인하 행정처분을 받은 제약사는 보다 신중하게 집행정지 신청 여부를 검토할 것으로 전망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업체들이 승소나 패소 가능성을 분석한 후 법원에 집행정지를 신청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며 “현재처럼 약가인하 처분을 받을 때마다 관행적으로 집행정지를 신청하는 경우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약업계 관계자는 “약가인하 해당 업체가 검토해 패소 가능성이 조금만 크게 나와도 집행정지 신청을 포기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다”며 “어느 제약사든 집행정지 기간 미인하 약가분 소급 환수를 피하고 싶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건보법 개정안이 제네릭 의약품을 제조하는 중소제약사에는 도움이 될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업계에 따르면 복지부가 시행하는 약가인하는 △특허 만료로 최초 제네릭 등재에 따른 오리지널 약가인하와 △재평가 등 가산종료, 급여기준 축소 약가인하 △리베이트 적발 약제 약가인하 등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 사례인 특허 만료로 최초 제네릭 등재에 따른 오리지널 약가인하의 경우 그동안 해당 제약사가 제네릭 진입 시기를 최대한 늦추기 위해 처분 취소소송이나 집행정지 신청을 활용해 왔다. 하지만 향후 이같은 전략은 어려울 것이라는 업계 분석이다. 상대적으로 중소제약사의 제네릭 진입이 용이해지는 것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다국적 제약사나 대형 제약사 등 오리지널 의약품을 보유한 업체들은 최근 건보법 개정안이 전체 제약업계에 악영향을 준다고 강조하는데 실제로는 제네릭 위주 중소업체에게 유리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건보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로 인해 향후 약가인하 처분을 받은 제약사들이 집행정지 신청에 신중을 기할 것은 확실하다는 판단이다. 제네릭 제품을 제조하는 중소제약사에게는 일부 긍정적 여파가 예상된다고 업계는 분석한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요청하려면 법률적 근거가 풍부해야 하는데 건보법 개정안은 쉽지 않다”라며 “업계를 둘러싼 환경이 점차 악화되고 있어 제약사들이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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