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전셋값 고점에 갭투자 호황···올해 계약 만기 돌아와
보증사고 등 관련 통계 역대 최대치···“하반기 전세사기 절정”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부동산 시장 호황기에 불었던 갭투자 열풍이 역풍으로 돌아왔다. 올해 들어 보증사고, 대위변제액, 임차권명령등기 등 전세사기 관련 통계들은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갭투자가 집중됐던 2021년 계약의 만기가 다가오면서 전세 피해가 본격화되는 모양새다.

25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전국에서 아파트 매매 가격의 70% 이상을 전세 보증금으로 충당한 건수는 2021년 7만3347건이다. 전년도인 2020년 2만6319건에 비해 약 3배 불어난 것이다. 같은 기간 돈을 들이지 않은 무자본 갭투자나 매매가보다 전세가 높아 집주인이 차익을 챙기는 마이너스 갭투자도 1847건에서 6986건으로 4배 증가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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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갭투자가 몰렸던 시기에 전셋값이 폭등했다는 점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2021년 전국 아파트 전셋값은 13.11% 급등했다. 당시 계약갱신청구권 시행으로 4년 치 인상분을 한 번에 받으려는 집주인이 크게 늘어나면서다. 하지만 전셋값은 지난해 3.35% 떨어졌다. 2001년 시세 조사가 이뤄진 뒤 가장 큰 하락폭이다. 전세 보증금이 높아진 데다 본격적인 금리 인상으로 이자 부담이 커지면서 전세 수요가 급감한 영향이다. 업계에선 2021년 계약 만기가 돌아오는 올해 역전세난 등 후폭풍이 절정에 달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시장의 우려는 현실화되는 모양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주택 전세보증금 보증사고 건수는 7974건으로 집계됐다. 분기 기준 역대 최대치로 지난해 4분기 2393건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특히 아파트는 올해 들어 보증사고가 급증하는 추세다. 올해 1분기 보증사고 건수는 2253건을 기록했다. 작년 1년치(2638건) 사고 건수의 85%에 달하는 규모다. 보증사고는 세입자가 전세 계약 해지나 종료 후 1개월 안에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받지 못하거나 전세 계약 기간 중 경매나 공매가 이뤄져 배당 후 전세보증금을 받지 못한 경우에 집계된다.

HUG가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에게 돌려준 보증금도 역대 최대다. 지난달 보증금 대위변제액은 2251억원으로 전월(1911억원)보다 17.8%(340억원) 증가했다. 대위변제를 받은 경우도 처음으로 1000가구에 달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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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가 신청하는 임차권등기명령도 급증하고 있다. 대법원 등기정보광장 통계를 살펴보면 지난달 집합건물 임차권등기명령 신청 건수는 3484건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2월(2850건) 대비 22% 가량 늘었고, 지난해 동기(851건)와 비교하면 4배 수준이다.

임차권등기명령은 전·월세 계약 만료 시점에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더라도 보증금을 돌려받을 권리를 유지하기 위해 법원의 명령을 통해 받는 권리다. 빌라왕 사건 이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지난달 말부터 임대인 고지 없이도 임차권명령등기를 할 수 있어 신청 건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정부는 갭투자로 인한 전세사기 피해가 올해 하반기 정점을 찍을 것으로 봤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19일 “전세사기 피해가 올해 하반기 정도에 절정에 달할 것으로 본다”며 “4년 전이나 2년 전 가격이 가장 급등하고 무자본 갭투자가 성행하던 시기에 이뤄진 계약이 후폭풍으로 시차를 두고 터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업계에선 전세사기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정부도 전세사기가 하반기 절정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 만큼 피해가 커지지 않도록 미리 조치를 취할 필요가 있다”며 “세입자들 역시 임차권등기명령과 보증금반환청구소송, 강제경매 신청 등 분쟁 발생 시 대처를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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