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강일 3단지 경쟁률 118대1까지 치솟아
‘건물만 소유·토지 임대료’ 조건에도 흥행몰이
저렴한 분양가와 입지 경쟁력에 초점
“자산 증식보다 안정적인 주거 경향 짙어져”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이 ‘반쪽짜리 아파트’라는 오명을 완전히 씻은 모양새다. 건물 소유권만 소유할 수 있다는 점과 매월 수십만원의 토지 임대료를 내야 한다는 장애물을 넘고 흥행에 성공했다. 저렴한 분양가와 입지 경쟁력이 수요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집값 하락과 전세사기 여파로 주택시장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자산 증식보다는 안정적인 주거를 원하는 심리가 확대된 점도 흥행 요인으로 꼽힌다.

11일 서울시와 서울주택도시공사(SH)에 따르면 최근 사전청약을 진행한 고덕강일지구3단지는 500가구 모집에 약 2만명이 몰려 평균 40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별공급과 일반공급의 경쟁률은 각각 33.1대 1, 67대 1을 기록했다. 새로 도입된 청년 특별공급의 경우 75가구 모집에 8871명이 몰려 경쟁률이 118.3대 1까지 치솟았다. 사전예약 당첨 커트라인은 무려 2232만원에 달했다.

고덕강일3단지는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으로 공급됐다. 토지임대부 주택은 SH가 보유한 토지에 아파트를 지어 건축물만 개인에게 분양하는 방식이다. 아파트 분양원가에서 60%를 차지하는 토지 가격이 제외되기 때문에 초기 분양가를 민간이 분양하는 가격의 30~6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 ‘반값 아파트’로 불리는 이유다.

고덕강일3단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조감도 / 사진=SH

다만 시장에선 사전청약 흥행을 두고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았다. ‘토지 임대료’가 가장 큰 걸림돌로 꼽혔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분양가에 토지 가격이 포함되지 않아 입주자는 공공에 토지 임대료를 내야 한다. 고덕강일3단지의 추정 토지 임대료는 월 40만원이다. 문제는 확정 임대료가 본청약 시점에 더 오를 수 있다는 점이다. 후분양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본청약은 공정이 90% 가량 완료되는 2026년 하반기 이뤄질 예정이다. 분양가 외에도 매달 토지 임대료를 내야 해 ‘사실상 또 다른 형태의 임대주택이 아니냐’, ‘반쪽짜리 소유권만 있는 아파트다’라는 지적이 있었다.

추후 주택을 처분할 때 시세차익을 보장받기 어렵다는 점도 매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현행법상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공공 환매 조건이 붙는다. 이에 따라 수분양자는 이사를 갈 때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집을 매각해야 한다. 이때 집은 분양가에 물가 상승률·정기예금 이자율을 붙인 가격으로만 팔 수 있다. 시세차익을 포기하고 청약통장을 쓰기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이어졌다. 이 밖에 건물 소유권만 있어 향후 재건축 추진이 쉽지 않다는 점도 단점으로 거론됐다.

이미 실패한 정책이란 평가도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2007년 참여정부 시절 경기도 군포시 부곡지구에 공급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전용면적 84㎡ 임대료가 당초 예상보다 높은 가격(40만원)에 책정돼 ‘40만원짜리 월셋집’이라는 비판을 들으며 흥행에 참패했다. 83.3%가 미분양되며 결국 일반분양으로 전환했다. 이후 2011년 서울 강남과 서초에 공급된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역시 평균 경쟁률이 각각 평균 3.5대 1, 6.9대 1로 저조한 결과를 낳았다.

/ 자료=SH

각종 우려 속에서 고덕강일3단지가 흥행에 성공한 건 저렴한 가격이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울 아파트 중위가격(서울 모든 아파트를 가격 순으로 나열했을 때 중간에 위치한 아파트의 가격)이 10억원을 넘어선 상황에서 임대료보단 분양가 자체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것이다. 저렴한 가격에 오랜 기간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이다.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은 40년간 거주 이후 재계약을 통해 최장 80년(40+40)까지 살 수 있다.

최근 전세사기 문제가 불거지고 월셋값이 크게 올랐다는 점도 수요를 끌어올린 요인으로 꼽힌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최근 주택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다 보니 청년층을 중심으로 자산 증식보다는 안정적인 주거를 추구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다”며 “입지 경쟁력이 있는 곳에 적은 금액으로 집을 얻을 수 있는 만큼 현금 여력이 부족한 수요자에게 인기를 끈 것으로 풀이된다”고 말했다.

고덕강일3단지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추가 공급도 예상되는 상황이다. 실제로 SH는 내년까지 서울 전역에 토지임대부 주택 9000가구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당장 다음 달 서울 지하철 5호선 마곡역과 송정역 사이에 위치한 ‘마곡지구 10-2단지’와 신방화역과 마곡나루역 인근 마곡 2·4단지 북쪽 ‘택시차고지 부지’에서 500가구 안팎의 물량을 사전청약으로 공급한다. 분양가격은 고덕강일 3단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전망이다. 또 앞으로 노원 하계5단지, 상계마들, 마포구 성산 등 노후 공공임대주택 재건축을 통해 5년 내에 3만가구를 더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모두 합하면 5년 내 약 4만가구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으로 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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