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량 전년 대비 절반 수준···빌라왕 사건 이후 기피 현상 심화
특례보금자리론 등 대출 규제 완화 여파로 아파트로 발길 돌려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집값 급등기에 아파트 대체재로 주목받던 빌라(연립·다세대주택)에 수요자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빌라왕 전세 사기 여파로 선호도가 낮아진 데다 정부가 대출과 세제·청약 등의 규제를 풀면서 수요가 빠르게 줄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10일 한국부동산원의 주택 거래량 통계를 살펴보면 올해 2월 빌라 매매 거래량은 7021건을 기록했다. 전체 주택 거래량(7만7490건) 중 9.1%에 해당한다. 2006년 통계 작성 이래 월별 기준 가장 낮은 비율이다. 반면 같은 달 아파트 거래 비율은 82.5%(6만3909건)으로 월별 기준 최고치를 나타냈다.

주택 수요층이 두터운 서울도 상황은 비슷하다. 지난 2월 서울 빌라 거래량은 1485건이다. 1년 전 같은 기간(3782건) 대비 50% 감소했다. 서울 주택 전체 거래(3975건)에서 빌라가 차지하는 비중은 37.4%를 나타냈다. 반면 아파트 거래 비중은 57.5%(2286건)을 기록했다. 아파트 거래량이 빌라를 넘어선 건 2021년 1월 이후 25개월 만이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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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수요가 급감한 건 지난해 10월 ‘빌라왕 전세 사기’ 사건이 직격탄이 됐다. 전세 기피 현상으로 전셋값이 하락하고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도 감소했다. 전세를 끼고 집을 사기가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한국부동산원의 월간 주택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빌라의 매매가격은 지난 1월과 2월 각각 0.58%, 0.47%씩 하락했다. 같은 시기 전세가격은 각각 0.82%, 0.71%로 떨어지며 매매가보다 낙폭이 컸다.

전셋값 하락 여파로 서울 빌라 전세가율은 세 달 연속 내림세다. 지난 2월 기준 평균 77.8%로 전월(78.0%)에 비해 0.2% 포인트 감소했다. 지난해 9월까지만 해도 80%를 웃돌았지만 12월 78.6%로 떨어진 이후 하락세가 지속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 주택 시장에 역전세난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집값 하락폭보다 전셋값 하락폭이 더 커지면서 전세가율도 내려가고 있다”며 “빌라의 경우 갭투자가 많은 편인데 현재 갭투자를 하기엔 부동산 시장 여건이 안 좋아졌다”고 말했다.

올해 1·3대책 발표 이후 대출 문턱이 낮아지면서 수요가 아파트로 옮겨 간 영향도 컸다. 특례보금자리론이 80%까지 대출이 되다 보니 수요자로선 인식이 나빠진 빌라를 살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황한솔 경제만랩 리서치연구원은 “빌라는 환금성이 떨어지고 가격 상승 여력도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다”며 “아파트 관련 규제가 완화되면서 실수요자들이 아파트로 눈을 돌리고 있는 분위기다”고 분석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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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 수요 감소는 각종 지표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달 전국 빌라 매매수급지수는 82.3으로 지난해 6월(96.1) 이후 8개월 연속 감소세를 나타냈다. 매매수급지수가 낮을수록 매수 희망자가 적다는 뜻이다. 전셋값이 무너지면서 빌라를 처분하려는 집주인도 늘어난 것도 지수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 가격도 내림세다. 서울 빌라의 평균 매매가격은 지난해 7월 기준 2억688만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지난 2월(2억40만원)까지 연속 하락했다.

시장에선 전세 시장이 회복하기 전까지 빌라 약세가 지속될 것으로 봤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출 규제가 완화되고 아파트값이 하락하면서 돈을 좀 더 주고서라도 아파트를 매입하려는 움직임이 늘었다”며 “반면 빌라는 매수세가 급감하면서 가격 하방 압력 더 커지고 거래량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빌라의 경우 갭투자 수요가 많은 만큼 시장 정상화는 전셋값 회복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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