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이상 5000만원 한도 묶여···1인당 GDP 성장 반영 법 취지 반해
여야 모두 한도 상향 법안 발의···부작용 최소화, 강력한 정책 의지 중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우리 경제 규모는 매년 커지고 있지만 국민들이 법적으로 보호받는 은행 저축액은 20년 이상 꽁꽁 묶여 있다. 

현행 예금자보호법은 1인당 국내총생산액과 보호되는 예금 등의 규모를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한 금액을 예금자보호보험금 한도로 정하고 있다. 대통령령은 2001년 한도를 5000만원으로 정한 이후 22년째 그대로이다. 

그런데 이 기간 법률에서 감안하라고 적시한 1인당 GDP는 3배 가까이 증가했다. 국민들이 보호받아야 할 예금액이 3분의 1토막 난 셈이다. 1인당 GDP 대비 보호 한도도 주요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미국 3.6배, 영국 2.56배, 독일 2.35배, 일본 2.27배인 반면 우리나라는 1.25배에 불과하다.

이에 예금자보호한도를 늘려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특히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파산 사태를 계기로 예금자 보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병욱, 양기대, 김한규, 신영대, 박성준 의원이, 국민의힘은 주호영, 홍석준, 조경태 의원이 각각 예금자 보호 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하는 법안을 제출한 상태이다. 

다만, 국회나 정부 일각에선 신중론도 감지된다.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올 수 있단 것이다. 대표적으로 예금자 보호 한도가 늘어나면 예금보험료도 높여야 하는데 시중은행들은 이를 예금금리를 낮추거나 대출금리를 올리는 식으로 고객에 부담을 떠넘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정부나 국회가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면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다. 

지난해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NH농협은행 등 5대 시중은행들은 이자이익으로 1년 전보다 20%이상 늘어난 36조9000여억원을 벌어들였다. 코로나 사태와 저금리 기조로 대출규모가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갑자기 금리가 늘어나면서 거둬들인 대규모 수익이었다. 

은행 노력으로 보기 어려운 이 막대한 이익의 혜택은 임직원들에게 돌아갔다. 성과급 등 직원 돈 잔치가 벌어지자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았고, 금융당국도 압박에 나섰다. 국회에선 예대금리차 공시 의무화, 대출금리 구성 요인별 공시 등 법안이 여야 할 것 없이 발의됐다.

그러자 시중은행들은 대출금리 인하와 기부 등 금융 지원책을 부랴부랴 내놓으며 들끓는 민심 달래기에 나섰다. 정부와 국회의 경고가 먹힌 것이다. 그러나 은행권의 조치가 미흡하단 지적은 여전히 나오고 있다. 

이 상황에서 예금자보호한도 상향 비용을 예대금리 조절로 국민에게 전가한다면 또 다른 비판 지점이 될 수 있다. 지금 은행권은 많은 국민들이 고통받는 고금리를 자양분 삼아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 당초 정유업계를 대상으로 거론됐던 횡재세의 제대로 된 부과 대상은 시중 은행들이란 얘기도 심심찮게 들린다. 

정부나 국회는 예금자보호한도를 올리면 고객의 예대금리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가 없다. 예금자보호한도 문제는 여야 모두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사안이다. 강력한 정책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은행도 꼼수를 부릴 생각을 접고 고통 분담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속도감 있게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 발의된 예금자보호한도 확대 법안 중 일부는 지난 2월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됐으나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4월 임시국회에서 건설적인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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