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심사 불발, 다음 소위서 다시 논의
3개월째 진척 없어 시장 혼선 가중
“자금 계획 다시 짜야 할 수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올 초 정부가 약속한 ‘실거주 의무 폐지’ 시행이 지지부진해지면서 청약자들의 불안감이 커지는 모양새다. 실거주 요건을 없애려면 주택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대책 발표 이후 세 달 가까이 관련 법안 논의가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다. 규제 완화 기대감에 청약에 나선 수요자들 사이에선 자금 마련을 비롯해 차선책을 마련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3일 업계에 따르면 분양가 상한제 주택과 공공택지 주택에 대한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 국회 심사가 연기됐다. 해당 개정안은 지난달 30일 국토교통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심사를 받을 예정이었으나 다른 법안 심사 일정에 밀려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관련 논의는 다음 소위에서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부는 1·3대책을 통해 실거주 의무를 폐지하고 이를 소급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수도권에서 분양가 상한제 적용 주택을 분양받은 수분양자들은 입주 즉시 2~5년간 실거주를 해야 한다. 부동산 투기 수요를 차단하기 위해 2021년 2월 도입된 제도지만 최근 분양시장이 위축된 상황에서 과도한 규제라는 지적이 이어지자 정부는 이를 폐지하기로 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 자료=국토교통부

실거주 의무가 폐지되면 입주 시기에 전세를 놓고 잔금을 치를 수 있으니 자금 부담이 줄어들 게 된다. 이 때문에 1·3대책 발표 이후 둔촌주공과 장위자이 등 서울 주요 분양 단지에선 계약률이 대폭 증가하기도 했다. 아울러 전월세를 끼고 사는 갭투자가 가능해져 분양권 거래 등도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됐다. 입주 아파트에서 전월세 물량이 대거 풀리면서 임대 주택이 한 번에 저렴하게 공급되는 효과도 노릴 수 있다.

하지만 정부의 발표 이후 국회 본회의는커녕 상임위원회 논의도 부진하다 보니 시장에선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실거주 의무 폐지는 시행령이나 규칙 개정이 아닌 법 개정 사안이라 야당이 다수인 국회 동의를 거쳐야 한다. 만약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 규제 완화 기대감에 청약에 나선 수요자는 자금 마련 계획을 다시 짜야 하는 등 모든 계획이 틀어질 수 있다.

반면 정부가 1·3대책에서 실거주 의무 폐지와 함께 내놓은 전매제한 기간 완화는 법 개정 없이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해 입법예고를 거쳐 이달부터 시행된다.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는 주택의 경우 실거주 의무 폐지가 확정되지 않은 채로 전매제한만 풀리면 분양권 거래에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분양가 상한제 지역이었던 서울 대부분과 경기 과천·하남·광명 등에선 사실상 실거주 의무 폐지 전까지 분양권 거래가 불가능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매제한 완화와 패키지로 불리는 실거주 의무 폐지가 시행되지 않으면 규제 완화를 기대하고 집을 팔았다가 다시 들어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매수자는 본인 집임에도 입주를 하지 못하는 위험 부담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다수당이 야당인 상황에서 국회 통과를 못하면 흐지부지될 수 있는 규제 완화 방식이 적절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발표 이후 3개월 동안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은 법안 발의를 한 여당조차 시행 의지가 없는 것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며 “내년 총선이 가까워야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 혼선이 가중되지 않도록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