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병덕 사단법인 파독근로자복지재단 이사장 인터뷰
“현재 고령·경제적 어려움에 한국 올 수 없는 형편”
“국가 헌신에도 잊혀질 위기···정부·국회 외면 말아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는 1960년대 당시 경제 개발을 위한 차관을 확보하기 위해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 등을 보냈다. 이들 파독 근로자들은 이국땅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며 우리나라 경제 발전의 마중물 역할을 했다. 그러나 60년이 흐른 지금 이들 중 상당수는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다. 독일에 남아있는 파독 근로자 대부분은 비용 문제로 고국을 그리면서도 오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에 파독근로자 단체인 파독근로자복지재단은 오는 6월 27일부터 7월 3일까지 6박 7일간 파독 근로자 방한 초청행사를 연다. 고령에 접어든 파독 근로자 80명을 초청해 국가에 대한 헌신과 희생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전한단 계획이다. 하지만 행사를 치르기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운 상황이다.

손병덕 파독근로자복지재단 이사장. / 사진 = 김현준 PD
손병덕 파독근로자복지재단 이사장. / 사진 = 김현준 PD

손병덕 파독근로자복지재단 이사장은 지난 27일 서울 여의도 재단 사무실에서 진행한 시사저널e와 인터뷰에서 “파독 근로자 중 60년 동안 한국에 한 번도 못 온 분들도 있다. 대부분이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이젠 한국에 오고 싶어도 올 수 없는 형편”이라며 “이분들의 마지막 인생에 발전된 대한민국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행사를 준비하면서 정부를 비롯해 파독 관련 기업, 단체에 협조를 구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으나 행사 재원 마련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각계 지원을 호소했다. 

본인도 직접 독일에서 광부로 일했다는 손 이사장은 “파독근로자들은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 등 대한민국 경제발전에 기여했으나 국가의 배려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며 “지원 관련 법안, 정책은 진영논리에 갇혀 막혀있는 사이에 우리는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다. 앞으로 길어야 15년 뒤엔 파독 근로자들은 이땅에서 모두 사라진다. 파독근로자에 대한 지원은 시간을 끌 사안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1960년대 정부는 왜 근로자들을 독일로 보냈는가.

당시 우리나라는 굉장히 빈곤했다. 산업을 개발하려 했지만 방법, 돈이 없었다. 돈을 빌려서라도 경제발전을 하기 위해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 영국 등을 방문했지만 다 거절당했다. 다만 같은 분단국가였던 독일은 보증을 세우면 차관을 해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돈이 없어 국제은행에서 보증서를 끊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보증서 대신 일할 노동자를 담보로 해서 돈을 빌려주기로 했다. 차관을 얻기 위해 광부와 간호사, 간호조무사들이 독일로 가게 된 것이다. 

파독 근로자 송금액. / 사진=김지윤 PD

파독 근로자들의 근무환경은 어땠는가.

독일로 갈 때는 환경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부가 보내서, 돈을 벌어야 하는 입장에서 간 것이었다. 환경은 선진국이었기에 한국에 비해선 좀 괜찮았던 것 같다. 

그래도 깊은 땅속에서 일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지하 1000미터까지 내려가 일했는데 그건 상상을 초월하는 경험이다. 땅에서 나는 열이 36도 이상이다. 엄청 고생했다. 최악의 조건 속에서 일하기에 건강이 안 좋아져 돌아가신 분들도 많다. 

파독근로자들이 국가에 기여한 부분은 무엇인가.

우리가 독일에 가 일을 해주는 조건으로 정부는 차관을 3억 달러 정도 확보했다. 이 돈으로 포항제철과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다. 또 광부들이 고국에 연간 5000만달러 규모로 외화를 송금하면서 국내에 외화가 유입됐다. 우리 광부, 간호사들은 월급을 받으면 95% 이상 한국으로 보냈다. 우리가 대한민국 경제발전의 밑거름이 됐다고 자부하고 있다. 

현재 독일 내 파독 근로자 규모는 어느 정도인가.

독일에 1세대가 3000명 정도 살고 있다. 참고로 국내에는 1만2000~1만3000명 정도 생존해 있다.

파독 근로자 송금액 추이. / 사진=김지윤 PD<br>
파독 근로자 송금액 추이. / 사진=김지윤 PD

6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가.

독일에 있는 분들은 빈곤층, 최저생활을 하고 있다. 연금은 직장 근무연수가 길수록 금액이 많다. 그런데 광부들은 보통 군 제대 후 가기에 보통 28세 이상이 돼야 해외에 나갈 수 있었다. 근무 연도가 짧으니 연금이 적고, 이로인해 빈곤층인 분들이 매우 많다. 그곳은 이웃 간 교류가 없어 안타까운 일도 발생한다. 혼자 살던 분이 숨진 뒤 6개월 후에 발견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현재 파독 근로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이들은 한국에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 없다. 독일은 주거 비용이 비싸 돈을 모아놓은 게 없다. 그래서 지금까지 못 들어오고 돌아가신 분들이 많아 너무 안타깝다. 정부에서 이런 것들을 고려해 도움을 주면 좋은데 그것도 여의치 않다. 

독일에 있는 분들은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는가.

나이 들면 생각나는 것이 고향이다. 지금도 환경만 되면 다 고국에 돌아와서 묻히고 싶어한다. 

파독 60주년을 맞아 초청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60년 동안 한국에 한 번도 못 들어오신 분들도 있다. 지금 이분들 나이가 보통 80세 이상이다. 이젠 한국에 오고 싶어도 들어올 수 없는 상황이다. 파독 60주년을 맞이해 정부, 기타 단체에서 협조를 좀 해줘서 이분들의 마지막 가는 길에 발전된 대한민국을 보이고 싶단 취지로 추진하고 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는가.

파독 관련 기업이나 단체에 협조를 구하고 있지만 쉽지는 않다. 지속적으로 요청하고 있지만 장담할 순 없는 상황이다. 초청행사에 더해 파독근로복지재단센터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 오고 싶지만 집이 없으면 못 들어오는 분들을 위해 만드는 센터이다.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면 그분들의 마지막 생애라도 고국에서 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파독근로자 기념관 건립도 추진하고 있다. 

2018년 국회 입법이 됐는데 시행령이 아직 미비돼 중단된 상태이다. 새정부가 출범했는데 정부가 시행령을 잘 만들어 주길 바라고 있다. 마지막 남은 숙원 사업이다. 우리가 살아있을 때 기념관이 지어졌으면 좋겠다. 

파독근로자 정책에 아쉬운 점은.

2016년 파독근로자에 대한 유공자 대우를 담은 법안이 국회에 상정이 됐으나 진영 관계로 통과가 안됐고, 지금도 새로 법안이 발의됐으나 계류 중에 있다. 국가에 공을 세운 분들, 국가를 위해 희생한 분들에 대해선 진영을 따지지 말고 적절한 대우를 해줬으면 좋겠다.

파독광부간호사법 제정. / 사진=김지윤 PD

파독근로자에 대한 정부 지원을 요구하는 이유는.

금전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는 정부에서 파견한 사람들이다. 열심히 일해 국가 부흥에 일조했는데 그 다음부터는 아무도 쳐다보질 않는다. 적절한 대우를 해주길 소망하고 있다. 정부는 매년 광복절 행사 등에서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 가서 차관을 얻어온 덕분에 우리나라 기초산업 발전이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따라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다. 

골든타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에 추진하는 행사나 기념관 건립은 파독근로자들이 잊혀지지 않을 마지막 기회이다.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 마지막까지 생존할 기간은 길게 잡아 15년 정도이다. 그 이후엔 파독 광부, 간호사들은 이땅에서 모두 사라진다. 우리는 시한부 인생과 같다. 시간을 끌 상황이 아니다.

파독근로자를 보면 어떤 마음이 드는가.

같은 동지의 한 사람으로 내가 조금 능력이 있었다면 이분들을 이렇게까지 두지는 않았을 것이란 아쉬움이 많이 든다. 너무 비참하기에 이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파독재단을 만들었다. 몇 년이 될지 모르겠으나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해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여러 사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에서 잘 지원해줬으면 좋겠다. 우리의 마지막 소원이다. 

대한민국에 있어 파독 근로자는 어떤 의미인가.

산업의 전사들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든 사람들이다. ‘우리가 없었더라면 지금 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당시로 돌아갔을 때 다른 길이 있었을지는 모르겠다. 60년전 우리가 아주 극빈한 상태에서 발전을 해야하는데 돈은 없고 해서 결정한 것이 파독 광부, 간호사들이었다. 그들이 갔기에 차관을 얻어왔고, 그들이 보낸 돈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이 이 정도로 올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이번 행사는 파독 근로자들에게 큰 의미를 갖고 있다. 이제 나이가 많은 고령자들이다. 이분들의 마지막 소원이나마 들어주고 싶단 간절한 마음에서 시작했다. 그분들도 지금 ‘나도 마지막에 한국을 구경할 수 있겠구나’란 엄청난 기대를 걸고 있다. 잘 끝날 수 있게 각계각층에서 많이 협조해 주면 감사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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