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안부 재단 통해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지연이자 지급
일본제철·미쓰비시 전범기업 빠져···포스코 등 기부 전망
피해자 측 “사과 없는데 면죄부···경술국치 선언과 같아”

한일 외교수장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회담하고 있다. / 사진=외교부 제공
박진 외교장관(왼쪽 아래서 두번째)과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오른쪽 맨 아래)이 지난달 18일(현지시간) 독일 뮌헨안보회의에서 회담하고 있다. / 사진=외교부 제공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정부가 행정안전부 산하 재단을 통해 일본 전범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지급할 강제징용 배상금을 대신 지급하는 내용의 ‘제3자 변제안’을 공식 발표했다. 재원은 민간의 자발적인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6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 관련 정부입장 발표’ 회견을 갖고 이 같은 방침을 밝혔다.

정부의 배상안은 2019년 1월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 등 지원에 관한 특별법(강제동원조사법) 시행 후 설립된 행정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2018년 3건의 대법원 확정판결 원고들에게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게 골자다. 앞서 재단은 지난 1월 목적사업을 규정하는 정관 제4조에 ‘일제 국외 강제동원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피해보상 및 변제’를 신설한 바 있다.

재단이 판결금을 지급할 대상은 2018년 승소한 3건의 대법원 확정판결 원고 15명(3명 생존)이다. 일본제철에서 일한 피해자, 히로시마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일한 피해자, 나고야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 등 3개 그룹이다. 배상금은 지연이자를 포함해 4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별도로 대법원에 계류돼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강제징용 소송 9건을 비롯해 국내 법원에서 다수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외교부는 “대한민국의 높아진 국격과 국력에 걸맞은 대승적 결단”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면서 우리 주도의 실질적 해법”이라고 자평했다. 외교부는 현재 계류 중인 소송의 경우에도 원고 승소 확정시 판결금 및 지연이자를 지급할 예정이다.

재원은 포스코 등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에 따라 일본이 지급한 돈으로 수혜를 입은 국내 기업들의 기부로 조성될 것으로 전망된다. 박 장관은 “재원과 관련해서는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마련하고 향후 재단의 목적 사업과 관련한 가용재원을 더욱 확충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6일 오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징용 피해배상 문제 해결 방안 발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6일 오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가 '제3자 변제'를 골자로 한 정부의 징용 피해배상 문제 해결 방안 발표에 대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피해자·시민단체 “전범 기업에 면죄부···국민으로서 수치스러워”

피해자와 시민단체들은 우리 정부가 사과없는 전범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줬다며 해법안 철회를 촉구했다.

일제강제동원 피해당사자인 양금덕 할머니는 이날 오전 광주 서구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사무실에서 정부의 발표를 생중계로 지켜본 뒤 “동냥처럼 주는 돈은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양 할머니는 “잘못한 사람은 따로 있고 사죄할 사람도 따로 있는데 (3자 변제 방식으로) 해결해서는 안 된다”며 “반드시 사죄를 먼저 한 다음에 다른 모든 일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의기억연대, 민족문제연구소, 민주노총 등 611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도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일본의 사죄와 배상이 빠졌다”고 비판했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대표는 이 자리에서 “윤석열 정부는 국민들의 확정된 법적 권리를 짓밟고 일제 전범 기업의 책임을 면죄해주는 친일매국 협상을 강행했다”며 “윤석열 대통령과 박진 외교부 장관은 우리 실정법의 최종 해석 권한을 가진 대법원의 판결에 위반하는 직무집행을 했다. 너무 참담하다”고 말했다.

김재하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도 “104년 전 이완용과 을사오적이 일본총독과 했던 경술국치 선언과 다를 바 없다”며 “국내기업이 수혜를 입어서 돈을 내야 한다는 것도 어처구니없다. 국민으로서 수치스럽기 그지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박 장관은 피해자 의견 수렴이 미흡했다는 지적에 대해 “피해자 한 분, 한 분을 직접 뵙고 또 진정성 있는 자세로 성실히 또 설명을 하고 이해를 구하는 노력을 지속해나갈 것”이라며 “많은 유족분들께서 우리 정부의 구상에 대해서 이해를 표해주셨고 또 상당수의 유족분들은 이 문제가 조속히 종결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을 주셨다”고 말했다.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외무상은 이날 기자회견을 통해 “한일관계를 건전한 관계로 되돌리는 것으로 평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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