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다음소희' 제작·투자·배급사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대표 겸직
"제2의 봉준호·박찬욱 나오려면 독립영화 저변이 탄탄해야"

김동하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대표(한성대학교 미래융합사회과학대 교수)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경제 규모로는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지만, 모순으로 가득찬 사회 체계 속에서 개인은 배제되고 희생되는 일은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 영화 <다음소희>는 이러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평단에선 칭찬이 이어진다. 애써 외면하지만, 우리도 매일 접하는 문제를 담담하지만 적나라하게 그려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도 작품 속 주인공 소희처럼 국내 영화산업의 구조적 생태계 속에서 흥행에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화의 기획부터 제작·투자·배급을 모두 함께 한 김동하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대표(한성대학교 미래융합사회과학대학 교수)는 무모한 도전이었다며, 저예산 독립영화 제작은 너무나 힘겨운 일이라고 말했다. ‘기생충’, ‘헤어질 결심’과 같은 한국 영화 대표작에도 투자했지만 갈수록 좁아지는 독립영화계에서 신인들의 등용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며, 한국 영화의 전성기는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이자 김 교수를 만나봤다.

-<다음소희>를 제작한 배경은

평소 한국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민간과 공공 사이의 진영논리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해 왔다. 우연히 ‘전주 콜센터 현장실습생’의 슬픈 사건을 접하고, 영화로 다룰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와 회사, 즉 공공과 민간 양쪽에서 소외된 ‘주변인’, 그리고 상대적 소수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특히 취약 계층에 속할 경우, 거대 조직에서 소외되는 개인의 모습은 매우 힘겹다. OECD 자살률 1위에다 청소년 사망원인 1위가 ‘자살’이라는 통계는 거의 매년 반복되고 있지 않은가.

숫자와 성과만 중시되는 양쪽의 사회체계 속에서 주인공 소희는 철저히 배제됐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정도만 다를 뿐 조직에서 소외되기를 두려워하는 개인인 경우가 많다. 영화 다음 소희에 공감하는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진영논리로 해법을 찾거나, 조직 또는 개인에 화살을 돌리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세월호 사건 때를 돌이켜보자. 누구는 정권에, 누구는 여당에, 누구는 기업에, 누구는 선장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누구 하나에 모든 책임을 물을 수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였다고 본다. 다음 소희에서도 극중 형사로 나오는 배두나가 기업과 학교를 찾아가 분노를 표출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문제는 그곳에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거대한 체계 속에서 한 개인이 어떻게 소외되는지 조명하고 싶었다.

어쨌거나 이런 특이한 기획을 영화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주인공은, 이 세상에 정주리 감독과 배두나 배우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김시은 배우는 선물과도 같았다.

-평소에 주변인에 대한 관심이 많았는지

평소에 존경하던 인물들도 따지고 보면 ‘주변인’같은 사람이 많았다. 신채호, 김구, 여운형, 김원봉 등. 진영을 막론하고 자신들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사람들은 어느새 ‘회색분자’ 취급을 받고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다. 체질적으로 한 쪽에 치우치는 걸 싫어하고, 직업도 주변인처럼 살고 있다. 대학교수와 벤처기업 대표를 함께 하면서 영화계에는 꽤 몸을 담았지만, 제작은 처음이다 보니 힘든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더 기를 쓰고 현장에 자주 나가 부딪치고 어울리며 배웠다.

어쨌거나 이 영화가 예술과 비판, 독립과 상업의 경계에 선 평가를 받는 점도 기존의 관습이나 진영에 치우치지 않고 당당하게 표현했기 때문인 것 같다.

-영화를 만들면서 어려웠던 점은

사실은 운이 좋은 편이다. 정부가 주도하는 지원과 투자 생태계에 도전했고, 운 좋게 지원금과 모태펀드 투자 모두 받을 수 있었다. 영화진흥위원회 장편독립영화제작지원을 받았고, 쏠레어투자파트너스라는 메인투자펀드 운용사로부터 투자를 유치하면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 이 영화의 투자자는 쏠레어투자파트너스와 케이엔투자파트너스, 그리고 트윈플러스파트너스 뿐이며, 독립영화 치고는 꽤 예산이 큰 편에 속한다.

특히 프랑스 칸 영화제에 후반작업도 마치지 못한 채 출품했는데, 비평가주간 폐막작으로 선정된 건 축복이었다. 이어 부산국제영화제와 사우디아라비아 레드씨영화제에도 다녀올 수 있었다. 덕분에 적은 예산에도 국내외 미디어의 도움을 받아 마케팅 효과를 거둘 수 있었고, 국내 극장가에서도 초반에는 비교적 많은 상영관을 확보할 수 있었다.

정말 고맙게도 많은 미디어와 평론가분들의 큰 응원과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손익분기점을 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전히 선량한 투자자들이 손실을 볼까 불안한 마음이다. 저예산 독립영화에 또 도전하는 일은 지금으로선 엄두가 나지 않는다. 물론 다 잘 해결이 됐지만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소송에 휘말릴 뻔한 적도 있었다. 비교적 좋은 여건에서 제작된 작품이 이 정도인데, 다른 독립영화들의 사정은 어떨까 싶다.

-독립영화가 고전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독립영화로 불리는 규모가 작은 영화들을 다루는 제작사와 배급사 생태계는 매우 열악하다. 더군다나 코로나 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어려워졌다. 어렵게 경쟁을 뚫고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자금을 지원받은 수준 높은 작품들도 배급사를 못찾아 개봉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실제로 다음 소희와 같은 시기에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은 작품 절반 정도가 배급사를 찾지 못해 우리회사에 직·간접적으로 배급 검토를 해오기도 했다.

나는 미디어와 벤처캐피탈(VC) 출신의 대학교수고, 대학의 창업보육센터장을 맡기도 했다. 하지만 지인이나 청년 창업가들에게 영화제작사 창업을 추천하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영화는 중심은 아티스트지만, 산업으로서 발전하려면 결국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자본과 기업가도 성장해야 한다.

케이(K)-팝이 전 세계적인 성장산업이라면, 영화산업은 성장세에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작은 영화 생태계가 활성화돼야 실력 있는 신인 감독들이 발굴되고, 이 아티스트들이 투자를 받아 규모가 큰 영화로 진출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지금 영화계는 ‘메이저리그’만 주목받을 뿐, ‘마이너리그’는 소외되고 있다. 마이너리그가 부실하다 보니 메이저리그도 정체돼 있다. ‘제2의 봉준호, 박찬욱’이 나와야 한다고 외친 지가 십여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저 두 감독과 비견될 만한 아티스트를 찾기 어려운 상황 아닌가.

-독립영화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가

한국영화계가 성장한데는 정부지원이 큰 역할을 해왔다. 영화진흥위원회가 1년에 약 40억원을 장편 독립영화제작에 지원하고 있는데, 성장산업이라면 절대금액이 크다고 보기 어렵다. 정부가 연구개발(R&D)에 투입하는 한 해 예산이 약 30조인 것을 고려하면 7500분의 1 수준이다. ‘기생충’, ‘오징어 게임’을 만들어낸 사람들도 독립영화에서 출발한 한국의 감독들이었다. 영화 다음 소희도 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고, 상당 금액의 수출계약도 이뤄졌다. 독립영화 지원의 폭이 넓어지면, 분명 중장기적으로 영화산업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영화 제작 뿐 아니라 투자, 배급도 계속할 것이다. 여유가 생긴다면 특히 신인이나 청년 아티스트들이 시장에 진출하는데 있어서 ‘등용문’ 역할을 하고 싶다. 능력 있는 감독과 프로듀서, 배우들을 발굴해 대중들에게 선보이고 싶은 바람이다. 또 작가활동도 하고 있다. 약 10년 전 썼던 소설 ‘명동’도 수십번 실패했지만, 다시 드라마 작가로 계약을 맺고 대본작업을 하고 있다. 결국 개인적 꿈의 종착역은 저널리즘에 기반한 크리에이터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