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 카이스트(KAIST) 명예교수 인터뷰
“삼성전자 SW 개발 노력 부족···이재용 회장이 비전 제시해야”

문송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 /사진=이호길 기자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삼성전자가 소프트웨어 역량을 높이지 않으면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할 수 없다. 삼성전자 경영진이 소프트웨어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이건희 회장이 스마트폰 사업을 키웠다면 이재용 회장은 소프트웨어를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

문송천 한국과학기술원(KAIST) 명예교수는 시스템반도체 경쟁력 확보의 선결 요건은 내장 소프트웨어 기술이란 점에서 삼성전자가 운영체제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운영체제 기술력이 없다면 삼성전자의 ‘시스템반도체 2030 비전’ 달성도 어렵단 지적이다. 앞서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메모리 분야에 이어 시스템반도체 부문에서도 2030년까지 세계 정상을 차지하겠단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문 교수는 시스템반도체 핵심이 연산과 제어 기능을 담당하는 운영체제 기술력이라고 강조했다. 이 때문에 중앙처리장치(CPU) 강자인 인텔을 제치고 시스템반도체 1위로 올라서기 위해선 소프트웨어 투자를 강화하고 10년 이상의 중장기 플랜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문 교수는 지난 1981년 국내 최초로 전산학 박사 학위(미국 일리노이대)를 취득해 ‘1호 전산학 박사’로 통하는 소프트웨어 전문가다. KAIST 전산학과와 경영대학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영국 케임브리지대와 에든버러대 등에서도 강의했다.

다음은 문 교수와의 일문일답.

-시스템반도체 분야에서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이유는

대표적인 시스템반도체인 CPU, 그래픽처리장치(GPU),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등에는 연산 처리 능력이 요구되고, 메모리 칩과의 교신 순서를 컨트롤하는 제어 장치가 필요하다. 이 알고리즘을 구현하기 위해선 소프트웨어가 필수적이다. 이런 소프트웨어를 자체적으로 생성할 수 있는 운영체제 기술이 있어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평가하나

삼성전자는 개발력이 부족하고 노력도 안 하고 있다. 외부 업체에서 설계 툴을 구매해서 활용하는데, 그렇게 하면 효율성이 떨어진다. 차세대 반도체 개발은 속도 경쟁이다. 아이디어를 수정하고 보완해서 성능을 계속 개선해야 하는데, 외부 운영체제를 사용하면 개발 속도가 느려지고 결국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2030년에는 시스템반도체에서도 1위하겠다고 4년 전에 발표했지만, 현 상황으로는 목표 달성이 불가능하다.

-삼성전자도 바다나 타이젠 같은 운영체제를 개발한 사례가 있지 않나

자체 운영체제를 내놓은 적은 있지만, 바다나 타이젠 같은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이 가능할 만큼 큰 스케일로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성과가 안 나왔다. 국내에서 코딩 인력을 활용해 개발하다가 실패한 이후 소프트웨어 법인을 미국으로 옮겼는데, 지금은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현지 소프트웨어 업체를 인수합병(M&A)해 인프라 애플리케이션을 키우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삼성전자 경쟁사라 할 수 있는 다른 시스템반도체 기업들은 어떤가

인텔의 경우 지난 25년간 소프트웨어 기초를 갈고 닦아서 마이크로소프트(MS)와 견줄 만하다고 평가한다. 가령 인텔이 윈도우 같은 프로그램을 구축한다면 3개월 안에 만들 수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기초가 부족하기 때문에 3~4년은 소요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시스코뿐만 아니라 미국과 유럽의 하드웨어 기업들도 소프트웨어 기술 개발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자체 운영체제를 보유하려는 추세다. 독자 운영체제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고, 삼성전자도 자체 개발에 성공해야 운신의 폭이 넓어지고 반도체 속도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반도체 생산 라인. /사진=삼성전자

-삼성전자의 소프트웨어 투자가 부족한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

결국 회사 경영은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구성원들이 소프트웨어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한다. 제자들 중에도 삼성전자 입사를 고려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고, 들어간다 해도 버티지 못하고 금방 나올 정도로 투자가 부족하다. 사장단도 대부분 전자공학과 출신이고, 전산학과 나온 사람은 없지 않느냐.

2015년쯤 삼성전자 사장단을 대상으로 강연한 적이 있다. 소프트웨어 중요성에 대해 설명했는데, 왜 우리가 이걸 해야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단 반응을 보였다. 강연 후 나온 질문도 거의 이런 유형이었고, 안드로이드 인수 거절에 대한 아쉬움도 없어서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면 앞으로 삼성전자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는가

기초 소프트웨어 역량, 그 중에서도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운영체제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삼성전자가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을 강조하는데, 기초인 운영체제가 먼저다. 운영체제 설계를 못 하는 시스템반도체 회사를 완성차업체에 비유한다면 자동차 조립 능력은 갖췄지만, 핵심 부품인 엔진을 만들지 못하는 기업인 셈이다.

시스템반도체 2030년 1위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단기적으로 달성할 수 있는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10~20년 장기 플랜을 갖고 소프트웨어 능력을 차근차근 키워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영진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 같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소프트웨어에서 인텔, MS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어떻게 할 것인지 중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반도체 사업은 1980년대 이병철 회장이  사업을 시작했고, 스마트폰은 이건희 회장이 시장 판도를 읽고 뛰어들어 주도권을 잡았다. 이제는 이재용 회장이 소프트웨어에 집중해 새로운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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