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인터뷰
“불황기 있어야 혁신 가능”
“성장 유일 방법인 R&D 투자 지속 강화”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 /사진=주성엔지니어링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미국, 유럽, 대만 반도체업계는 자체 시장을 확보했지만, 우리나라는 자생력이 부족해 소부장 산업이 위기다. 제조 산업과 소부장 산업이 고루 성장할 수 있는 균형 발전이 이뤄져야 한다. 국내 제품을 많이 사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 등의 정책이 필요하다”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회장은 국내 소부장 산업이 난관에 봉착했다고 진단하면서 세계 주요국이 반도체 제조 기반을 강화하는 자국 중심주의 확산으로 위기감이 높아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때문에 소부장 산업이 동반 성장할 수 있는 균형 발전 정책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비 위축으로 시황이 악화된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에 대해선 불황이 혁신 기회가 될 수 있다며 차세대 기술 연구개발(R&D) 투자를 멈추지 않겠다고 밝혔다. 태양전지 사업은 성장성을 높게 평가하면서 발전 전환 효율(태양 빛의 전기에너지 변환율을 나타내는 수치)이 업계 최고 수준인 태양전지 장비를 출시해 매출 비중을 늘릴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지난 1993년 주성엔지니어링 창립 이후 반도체·디스플레이·태양전지 장비 등을 공급해 회사를 연매출 3000억원 이상 규모로 키워낸 1세대 벤처기업인으로 정부와 산업계에 대한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다음은 황 회장과의 일문일답.

올해는 주성엔지니어링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인데 소회가 어떤가

사업 초기에는 한국에서 만든 나사 하나도 반도체 장비에 못 쓴다고 했다. 사람들이 국내 반도체 장비 기술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해외에서 우리나라 기술을 벤치마킹하는 단계까지 와 있다.

30년 전과 비교했을 때, 반도체 업계는 삼성전자·SK하이닉스, 디스플레이는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 등이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국내 소부장 산업은 어떤가

제조 산업 성장에 비해서는 많이 부족하다. 제조 산업은 지속적인 투자가 성장 요인으로 작용했지만, 소부장은 꾸준한 투자가 부족했고 시장이 없었기 때문에 성장 속도가 늦었다.

중국의 경우 반도체 공장을 구축할 때 장비 국산화율이 30%가 안 되면 정부에서 인허가를 안 해준다.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인프라를 키우기보다는 쫓아가는 쪽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이제는 소부장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니 성장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는 미국 행정부가 네덜란드, 일본 등과 함께 첨단 반도체 장비의 중국 수출을 규제하고 있다. 우리나라 소부장 산업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좋을 게 없다. 중국의 국산화율이 우리나라보다 3배 이상 높다. 중국의 국산화율이 빠르단 점에서 우리나라 소부장 산업이 설 자리가 없다. 수출 규제로 인해 중국이 자국 반도체 기술을 더 발전시키면 우리나라 소부장 산업은 더 큰 위기를 맞는다.

미국, 중국, 대만 등은 자체 반도체 시장을 갖고 있다. 그 시장은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자체 시장이 없는 우리나라는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건강한 산업 생태계를 키우는 게 중요할 것 같다. 이를 위해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나

미국, 중국, 대만, 일본, 유럽 등은 소부장 산업과 함께 균형 발전을 해왔는데 우리나라는 이게 부족했다. 지금이라도 제조 산업과 소부장 산업이 균형 있게 발전해야 한다.

제조 기업들이 국내 장비를 많이 쓰면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중국은 그렇게 해야 허가를 내주고 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다. 기업이 노력하고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하다.

현재 반도체·디스플레이 업황이 침체 국면이다. 반등 시기에 대한 전망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관건이다. 전쟁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됐기 때문에 양국 전쟁이 언제 끝나느냐가 중요하다.

산업 기술은 불황기가 있어야 혁신이 가능한 측면도 있다. 불황이 없으면 혁신이 어렵다. 반도체 산업이 지난 10년간 계속 좋았기 때문에 혁신하기 힘들었다. 이제는 기존 방법으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걸 모두 인식하고 있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혁신 기업이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고, 이는 주성엔지니어링에도 기회가 될 수 있다.

주성엔지니어링 용인 R&D센터. /사진=주성엔지니어링

주성엔지니어링은 불황을 어떻게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계획인가

R&D 투자를 계속 강화할 예정이다. R&D 투자는 주성엔지니어링이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2020년에 용인 R&D센터를 구축해 연구개발과 생산 기지(경기도 광주)를 이원화한 점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차세대 기술 대응은 어떻게 하고 있나

반도체 분야 주력 제품인 원자층증착(ALD)과 화학기상증착(CVD) 장비는 초미세공정에 활용된다. 불황기에도 다른 장비보다는 수요가 많을 수 있다.

8세대 이상 IT용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대응 측면에서도 주성엔지니어링이 제일 앞서 있다. 패널업체에서 얼마나 빨리 확대할지가 중요할 것 같고, 기술은 계속 개발돼야 하기 때문에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용 디스플레이의 경우 스마트폰보다 시장이 커지지는 않을 것 같다. 다만 디스플레이가 적용되는 애플리케이션의 다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태양전지 장비 사업성은 어떻게 평가하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 수요는 공장이 있는 특정 지역에 국한돼 있지만, 태양전지는 전 세계가 시장이란 점에서 유망하다. 산업 기술을 인체에 비유한다면 반도체는 머리, 디스플레이는 눈, 태양전지는 에너지에 해당한다. 태양전지 사업은 계속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주성엔지니어링 매출에서 태양전지 장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 미만인데, 향후에는 어떤 수준을 예상하나

장기적으로 보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 이상으로 올라갈 것 같다. 3년 후 정도로 예상한다.

지금 생산 중인 태양전지 장비의 발전 전환 효율은 25% 수준인데, 올해 말에는 35% 효율의 장비를 출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발전 전환 효율이 35%인 장비는 에너지 혁명 수준으로 산업계 기준으로 가장 높은 수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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