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한미 금리 차 뛰는데 경기는 침체···고민 깊어지는 한은
5%대 1월 물가지수, 공공요금 상승 기인···이달에도 높은 수준 이어갈 듯
핵심 변수로 계절적 요인·일시적인 충격 배제한 근원물가 추이에 관심
근원물가 전월 동기 대비 5.0% 상승…일부 품목 국한하지 않고 인플레이션 확산 지적

한국은행 기준금리 추이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한국은행 기준금리 추이 /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인상하는 '베이비 스텝'을 단행했다. 한미 기준금리 역전 폭이 기존 1%포인트에서 1.25%포인트로 확대된 가운데 오는 23일 기준금리 결정을 앞둔 한국은행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더 커진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고려하면 기준금리 인상이 불가피하지만 경기 침체를 우려해 긴축 고삐를 더 조이기도 쉽지 않다는 관측이다. 어느 쪽도 쉽사리 단언할 수 없다는 시각이 지배적인 만큼 금리 향방을 결정하는 최대 변수로 계절적 요인과 일시적 충격에 의한 영향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 추이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물가는 여전히 5%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1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지난해 동월 대비 5.2% 상승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2월 5.0%까지 낮아졌던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이 다시 상승한 셈이다.

1월 물가 상승은 전기료와 가스요금이 크게 올라간 것이 주 요인이다. 전기요금은 작년 1월과 비교해 29.5%, 도시가스요금은 이 기간 동안 36.2%나 상승했다. 물가는 공공요금 인상에 따라 이달에도 높은 수준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금리 결정에 있어 물가 지수는 핵심 변수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공요금이 올라가면서 물가상승률을 상당부분 예측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행도 당초 예상치에 부합하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이환석 한국은행 부총재보는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석유류가격 오름폭이 축소됐으나 전기료 인상, 한파에 따른 농축수산물가격 상승 등으로 전월 대비 다소 높아졌다"며 "이는 지난달 금통위 당시의 예상에 부합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1월 물가 지수가 공공요금 상승에 기인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예측이 가능한 통제 변수로 물가지수가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때문에 향후 금리 결정에 있어 물가의 장기 추세를 보여주는 근원물가 지수 추이가 핵심 변수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근원물가는 계절적 요인, 일시적인 충격에 의해 영향을 받는 농산물, 석유류 관련 품목을 빼고 작성하기 때문에 물가의 장기적 추세를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된다.

1월 근원물가는 전월 동기 대비 5.0% 상승했다. 이는 4.8%였던 전월보다 상승 폭이 확대된 것은 물론 2009년 2월(5.2%) 이후 약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를 놓고 경기 하강 흐름 속에서 커졌던 인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상승) 정점 통과에 대한 기대감은 한풀 꺾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전반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여전히 강하다는 의미다. 근원물가가 꾸준히 오른다는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국제유가의 영향을 크게 받는 석유제품 등 일부 품목에 국한하지 않고 전반적으로 확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한국의 소비자물가지수가 지난해 7월 6.3% 이후 완만하게 둔화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더욱이 근원물가가 오른다고 기준금리를 무조건 인상하기에는 경기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지난 4분기 한국경제는 –0.4% 성장하면서 코로나 사태 이후 2년 반 만에 첫 역성장을 기록했다. 올해 연간 경제 성장률은 작년 말 한국은행이 1.7%, 정부가 1.6%로 전망했는데 실제로는 이보다 낮은 1%대 초중반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여러 기관들 사이에서 쏟아지고 있다.

경제학적으로 금리 인상은 자금 조달 비용을 높이고 소비·투자를 위축시켜 경기를 악화시킨다. 실제로 작년 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가 0.25%포인트 오를 경우 향후 1년간 경제 성장률이 0.06~0.07%포인트 낮아진다고 추산한 바 있다.

현재 한국은행의 기준금리는 3.50%다. 한미 금리 역전 폭은 상단을 기준으로 1.25%포인트에 달한다. 세계 최대 선진국인 미국에 비해 위험도가 높은 한국에 투자하려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는 것이 통상적인 상식이지만 경기 둔화 가능성과 낮은 경제성장률을 고려하면 한국은행으로서는 고민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한편 금리 정책을 결정하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의 지난달 의견은 인상론과 동결론이 거의 반반 수준에서 나뉘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기준금리 추가 인상 등 금통위 내 통화정책 방향에 대한 기류는 거의 3대 3 수준으로 나뉘었다. 3명의 금통위원은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금통위 내부에서 물가 둔화 속도나 한미 금리 역전 폭 확대 영향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며 "의견이 3대 3으로 나뉜만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캐스팅보트(합의체 의결에서 의장이 갖는 결정권)를 행사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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