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유출 처벌 강화는 불법적 유출 경우에만 가능한 방지책
중국行은 옛날 얘기···최근엔 미국行이 대세
명장제도·중소업체 퇴직 임원 고용비 지원 강화 등 해결책으로 거론돼

사진=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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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반도체 인력 유출 리스크는 과거부터 있어 왔지만, 최근엔 더욱 그 심각성이 부각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반도체 기술이 곧 국가 경쟁력 및 외교협상 카드가 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인력 유출로 해외업체들의 경쟁력을 키워줄 경우의 여파를 감안하면 반도체 인력들을 지키기 위해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 좋은 조건을 찾아 해외로 눈을 돌리는 것은 비단 기업뿐이 아니다. 반도체 인재들과, 이들이 갖고 있는 기술들에 대한 유출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형국이다. 최근 삼성전자 자회사 세메스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초임계 반도체 세정장비 핵심 기술을 중국으로 유출한 전직 연구원 등이 기소되기도 했다.

한때 중국에서 퇴직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임원들에게 거액을 주고 데려가려 했으나, 기술 관련 노하우만 빼 간 후 퇴직하게 되는 사례들이 부각되면서 요즘은 분위기가 바뀌었다는 전언이다. 퇴직인사 뿐 아닌 현직 인재들도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한다. 중국이 아닌 미국 반도체 업계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직원들에게 가고 싶은 회사가 됐다는 것이다.

◆“미국 중소 팹리스라면 연봉 줄여도 갈 판”

한 국내 반도체 대기업 연구원은 “미국은 중소 팹리스 업체들도 많고 해고된다고 해도 갈 만한 다른 회사도 많으며, 한국 대기업 출신 반도체 인력이라면 환영하는 분위기”라면서 “영어만 가능하면 자식들 교육 등 때문에 굳이 거액을 받지 않고 돈을 지금보다도 덜 받더라도 미국으로 가고 싶어하고, 실제로 가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퇴직임원들은 회사에선 역할이 없어졌지만 그 자체가 이미 고급인력이다. 반도체 전문 인력들의 경우 이미 노하우가 쌓여 있어 인위적 기술유출을 하지 않더라도 채용 자체만으로 해외기업들의 반도체 기술을 끌어올려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를 국내 기술경쟁력 강화로 돌리기 위해선 퇴직임원들을 대우하고, 이들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길을 터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기술유출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나오지만 처벌강화는 말그대로 불법적 기술유출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합법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따라 직장을 옮기는 것과 관련해선 규제보다는 ‘길터주기’ 등 이에 맞는 대우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기술인력 유출 방지책과 관련한 이야기는 20년 전부터 계속 있어 왔지만, 최근 부각되는 반도체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더욱 구체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업계에선 중소업체에서 퇴직임원들을 더욱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제기된다. 현재도 많은 퇴직임원들이 중소업체로 재취업하고 있지만 여건 상 퇴직임원들을 고용하지 못하는 곳들이 많다는 전언이다.  

한 반도체 업계 인사는 “국내 중소 팹리스 등에서 퇴직임원에 대한 수요가 있으나 기업 여건상 연봉을 맞춰 주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며 “국가에서 이들 인건비에 대한 보조금의 상당부분을 지급한다면, 더 많은 중소기업에서 퇴직임원들이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국가공인 ‘반도체 명장’ 제도를 만들어 일종의 시험에 통과하면 박사급 대우를 해줌으로써 이들을 사외이사 및 강의 등을 할 수 있게 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업계 인사는 “반도체 관련 업체에서 사외이사 중 박사급 전문가를 꼭 포함해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 퇴직 임원들도 전문인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있다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이 같은 지원대책을 펼치기 위해선 적극적인 예산투입이 필요한데, ‘기업 탈한국’ 방지책 마찬가지로 인재를 대하는 인식 자체가 달라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쉽게 말해 ‘대기업 퇴직자한테 왜 또 돈을 지원하느냐’와 같은 프레임이나 시각으로는 대책 마련이 어렵다는 것이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반도체 퇴직임원은 사회적으로 필요한 인력양성을 하게 하거나 공공기관 자문역으로 활용할 수 있다”며 “다만 이 같은 정책들은 결국 모두 비용을 투여해야 가능한 일임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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