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회서 임직원과 직접 만나 소통하는 파격 행보···더 자유로운 기업 문화 돼야

[시사저널e=박성수 기자] 과거 현대자동차그룹은 국내 대기업 중에서도 ‘군대식 문화’가 가장 심한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수직적인 기업문화에 상명하복의 경직된 조직 분위기가 오랜 기간 굳어지면서 직원들 사이에선 불만이 컸다.

201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높은 임금과 고용 안정성으로 가장 취업하고 싶은 기업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나, 업무강도와 딱딱한 조직 분위기 등의 단점이 워라밸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부정적으로 비춰지면서 차츰 순위에서 밀려나게 됐다.

한 때 기업 정보 플랫폼에서 현대차 단점에 대해 ‘심한 군대 문화’, ‘눈치 보여 일 없어도 퇴근 못해’, ‘쓸데없는 보고서’ 등이 가장 많이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보수적인 기업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일례가 복장이다. 예전에 취재원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과거 현대차 복장에 대한 에피소드는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한 직원이 정장 안에 입는 상의 셔츠를 흰색이 아닌 파란색으로 입고 왔다가 상사에게 정강이를 차였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넥타이 무늬로도 지적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래서 예전에 기업들 사이에서 정장을 벗어던지고 캐주얼 차림으로 복장이 바뀔 당시 현대차만은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웬걸. 현대차는 순식간에 캐주얼 차림으로 직원들 복장이 바뀌었다. 정장을 입고 만났던 사람들이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이같은 변화의 배경에는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있다. 2017년 코나 신차발표회 때 당시 부회장이었던 정의선 회장은 흰 반팔티에 청바지, 운동화를 신고 등장했다. 부회장이 공식석상에서 자율 복장으로 나타나자 임직원들 사이에서도 캐주얼 복장에 대한 부담이 줄었고, 2년 후인 2019년 현대차그룹은 임직원 복장 완전 자율화를 도입했다.

올해 신년회에서도 기업문화 변화의 움직임은 나타났다. 정 회장은 올해 신년회를 양재동 본사가 아닌 남양연구소에서 타운홀 미팅 방식으로 진행했다. 수백명의 임직원들과 경영진이 모여 미래 비전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자리를 가졌다. 신년회가 끝나고 정 회장은 직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4대그룹 신년회 중 회장이 직접 나와 직원들과 소통한 곳은 현대차가 유일하다.

그는 신년 메시지에서도 기업문화 변화를 강조하며, 특히 보고 문화에 대해 언급했다. 정 회장은 “보고하는 것을 보면 결론이 빠지는 일이 많다. 이러한 보고 문화는 바꿔야 한다”며 ”보고 받는 사람에게 여러 선택지를 주고 고르라는 식은 바꿔야 한다. 보고가 받아들여지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낙담하거나 실망하지 말고, 지속적으로 설득해야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보고를 받은 사람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리더의 자질이며 인사의 기준으로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신년회 마지막엔 직원들로부터 질문을 받아 직접 답하는 시간을 가졌다. 몇 가지 질문이 끝나고 더 이상 질문이 나오지 않자 정 회장은 “생각보다 질문이 없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수백명의 직원들이 함께 있고 전 임직원들이 영상으로 지켜보는 상황에서 최고 경영진에게 질문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기업문화 변화는 아래에서 위로 바뀔 때도 있지만, 위에서 아래로 바뀌는게 대부분 더 빠르다. 정 회장이 격식을 파괴하고 소통을 강조한 만큼, 지금처럼 직접 몸소 보여준다면 현대차의 변화는 더 빨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내년 신년회는 정 회장과 임직원이 더 자유롭게 소통하는 장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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