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분기 시총 상위 20곳 현금성자산 250兆 ‘역대 최대치’
비주력사업 정리·부동산 매각···“성장보다 생존에 무게”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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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유호승 기자] 글로벌 경기침체와 고금리·고환율 등의 악재가 겹치며 대기업집단이 비주력사업을 정리하거나 부동산을 매각하는 등 기존 자산을 현금화해 곳간에 쌓고 있다. 

악화된 시장 상황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면서 기업의 경영지표 역시 악화되고 있다. 기업 대출금리는 올해 들어 계속 오르며 지난 10월 기준 5.27%를 기록했다. 유럽 재정위기였던 2012년 9월의 5.3% 이후 최고 수준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내년 경제성장률 예상치는 2.2%로 올해에 비해 성장세 둔화가 나타날 것”이라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글로벌 경기둔화, 국내외 통화긴축, 환율 및 물가불안 등과 같은 위험 요인이 계속되는 불안정한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커지는 이자부담과 강원 레고랜드 사태로 촉발된 자금시장 경색에 기업들은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대신 현금 모으기에 집중하고 있다. 과거 기업공개(IPO)와 유상증자, 회사채 발행 등으로 운영자금을 확보하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이로 인해 주요 상장사는 현금 확보를 경영의 최우선순위로 설정하고 있다. 올해 3분기 기준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사 시가총액 상위 20곳의 현금성 자산은 250조2627억원으로 역대 최대치다.

주요 상장사 중 최근 현금 보유액이 크게 늘어난 기업들은 한화솔루션과 LG전자, ㈜한화, 현대차 등이다. 한화솔루션의 올해 1분기 기준 현금 보유액은 1조7000억원이었지만 반년이 지난 3분기에는 2조4000억원으로 41.1% 늘었다.

같은 기간 LG전자는 5조6000억원에서 7조6000억원으로 35.7%, ㈜한화와 현대차는 각각 32.5%, 30.0% 늘었다. 국내 기업 중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은 삼성전자 역시 1분기 124조원에서 3분기 128조2000억원으로 8.8% 증가했다.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 그래픽=정승아 디자이너

단기간에 기업들의 현금 보유액이 크게 늘어난 것은 비주력사업 정리와 부동산 매각 등을 통해서다. 한화솔루션은 물적분할로 설립된 한화첨단소재의 지분 일부를 사모펀드(PEF) 글랜우드크레딧에 매각한다. 매각 대금은 6800억원이다. SKC는 최근 필름사업부문(SKC미래소재)을 1조5950억원에 한앤컴퍼니에 매각했다. 매각대금을 일시불로 받았다.

부동산 등의 자산을 팔아 자금확보에 나선 기업들도 많다. 대한항공은 서울 종로 송현동 필지를 5579억원에 매각했다. 한진칼의 종속기업인 칼호텔네트워크는 제주KAL호텔을 950억원에 처분했다. 

재계가 현금 쌓기에 주력하면서 대규모 인수합병이나 신성장동력에 대한 투자가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곳곳에서 나온다. 경제한파가 지나가고 경기상승기에 모아둔 현금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취하고 있지만, 자금이 시장에서 돌지 않으면서 시장상황은 더욱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50조원이 넘는 자금을 시장에 투입하는 등의 긴급안정대책을 시행했지만, 시장 경색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회사채나 기업어음(CP) 등을 사들여 자금이 필요한 기업에 공급하겠다는 대책이지만, 근본 원인인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여전해 불안감은 계속되는 모양새다.

재계 관계자는 “경제상황이 좋지 않은 현재는 성장보다 기업 생존에 무게를 둬야할 시점”이라면서 “투자보다는 자금확보에 집중하며 최대한 방어적으로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운 곳들이 대부분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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