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통제 불신과 실효성 의문 제기···구색 맞추기 비판
문제는 당국 징계 수위와 방식 근거···모호한 규정인데 준수 의무 부여
감독 소홀 범위 구체적 명시, 책임과 징계 수위 사이 합리적이고 분명한 인과관계 있어야
어느 누구도 책임서 자유로울 수 없어···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 필요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금융당국이 앞으로 사회적 파장이 큰 '중대 금융사고'가 발생할 시 금융지주 회장이나 은행장이 내부통제의 책임을 지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당국은 최고경영자(CEO) 뿐만 아니라 모든 임원이 내부통제에 역할을 하급자에게 떠넘기지 않도록 각 업무영역별 임원의 책무를 명확히 한다는 계획이다.

내부통제란 금융회사가 장래 발생가능한 리스크를 줄이면서 목표를 달성하고자 임직원의 업무처리 행위와 관련해 스스로 마련·준수해야 하는 각종 기준과 절차를 의미한다. 금융기관의 건전한 경영과 금융소비자 보호, 금융시장의 안정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제도다. 모든 금융기관은 금융회사지배구조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건전한 경영과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최근 우리은행 700억원대 횡령 사건이나 1조6000억원 규모의 투자자 피해를 일으킨 라임 펀드 사태 등 크고 작은 금융 사건이 잇따르면서 내부통제에 대한 불신과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내부통제기준을 갖추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구색 맞추기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금융위원회는 라임 사태와 관련해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에게 문책경고 상당의 중징계를 내렸다. 5단계로 구분된 금융사 임원제재 중에서 3번째로 높다. 문책경고부터는 금융사 취업이 3~5년간 제한돼 원칙상 연임이 불가능하다.

일각에서는 손 회장이 법적 소송에 돌입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앞서 손 회장은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DLF)와 관련해서도 중징계를 받았지만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1심과 2심에 승소하면서 회장직을 이어나갔다.

내부통제기준 범위는 지배구조법 시행령, 금융회사지배구조감독 규정, 각 금융업권별로 모범규준 등에서 명시하고 있지만 실제 들여다보면 추상적이다. 실제 손태승 회장이 제기한 DLF 징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서 법원은 금융당국에게 "추상·포괄적 사유만 제시해 구체·개별적인 기준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현행 지배구조법 제24조 및 시행령 19조 등에 따르면 금융회사의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내부통제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관건은 내부통제 소홀 여부를 판단하고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금융당국과 금융회사 간 발생하는 인식 차이다. 금융회사가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했을 때 금융회사 CEO에게 제재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판단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당국의 징계 수위와 방식의 근거다. 당초 모호한 규정인데 '실효성 있는 내부통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는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과 시행령을 준수 의무의 핵심 근거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작 금융당국은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금융회사에 책임을 떠넘기는 데 대한 비난은 물론 징계의 적절성에 대한 불만이 제기되는 이유다. CEO 중징계 시 금융회사가 큰 CEO 리스크를 짊어지게 되는 만큼 당국도 감시감독 미흡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물론 금융사의 책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입힌 불법 금융 행위 관련자는 엄벌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감독자 책임을 언제 어떻게 적용할지에 대한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에 감독 소홀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책임과 징계 수위 사이에 합리적이고 분명한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피해자들에게 보여주기식으로 무리하게 징계를 남발한다면 이런 징계는 설득력을 갖지 못할 뿐 아니라 금융당국의 권위마저 송두리째 흔들게 될 것이다.

금융당국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근본적이고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금융소비자 보호와 성숙한 자본시장은 보여주기식 일회성 CEO 단죄로는 도달할 수 없다. 감독당국의 근본적인 금융정책 고민과 자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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