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보다 27만명 늘어···‘1주택 종부세 완화’ 무산도 영향
집값 하락에 실거래가·공시가격 역전 현상 속출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올해 종합부동산세 납세자 수가 사상 최대인 120만명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조세 저항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집값 하락세가 가팔라지면서 고점에서 책정된 공시가격에 맞춰 종부세를 내야 하는 납세자들의 불만이 커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미 종부세 납세자가 많은 서울에서 실거래 가격이 공시가격을 밑도는 사례가 등장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만큼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 수준으로 동결하거나 기존 현실화율 목표치를 낮춰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주택분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하는 인원은 120만명으로 추산된다. 2020년 기준 국내 전체 주택 보유자(1470만명)의 8%에 이르는 규모다. 주택 보유자 100명 중 8명이 종부세 과세 대상인 셈이다. 지난해(93만1000명)와 비교하면 29%(27만명) 가량 늘었다. 종부세가 100만명을 넘어선 것은 2005년 도입 이후 처음이다. 과세 대상자들이 납부하는 주택분 종부세액 역시 2017년 4000억원에서 올해 4조원대로 늘어날 전망이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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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부세 납세자가 급격히 증가한 건 문재인 정부 시절 주택 투기 수요를 억제한단 이유로 보유세 부담을 급격히 높인 영향이 크다. 당시 정부는 2030년까지 공시가격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격 비율)을 90%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공시가격을 대폭 올렸다. 여기에 부동산 가격 상승까지 겹치면서 공동주택 공시가격은 지난해 19%, 올해 17.2% 상승했다. 서울과 경기는 각각 14.22%, 23.20% 올랐으며, 인천은 29.33% 증가했다.

‘1주택자 추가 특별공제 3억원’ 도입이 국회 논의 과정에서 무산된 것도 과세 대상이 늘어난 배경이다. 앞서 정부는 현행 공시가 11억원인 기본공제에 더해 3억원의 특별공제를 제시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반대했고, 끝내 여야 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이에 따라 공시가격 11억~14억원 1주택자들도 이번 과세 대상자에 포함됐다. 1가구 1주택자 전체 세 부담은 600억원 가량 늘었다.

문제는 집값이 계속 내리고 있단 점이다. 종부세 납세자가 제일 많은 서울의 아파트값은 23주 연속 하락했다. 한국부동산원 조사에 따르면 지난달 마지막 주 서울 아파트값은 전주(-0.28%) 대비 0.34% 하락하며 지난 2012년 6월 11일(-0.36%) 이후 10년 4개월 만에 가장 큰 낙폭을 기록했다. 최근 부동산 시장은 금리 인상으로 인해 이자 부담이 커지고 집값이 더 떨어질 것이란 우려에 매수 심리가 위축되며 거래 절벽 현상이 심화됐다. 급매물 위주로 거래되다 보니 하락폭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실거래 가격이 공시가격을 밑도는 단지들도 속출했다. 강동구 고덕동 ‘고덕그라시움’ 전용면적 74㎡는 이달 7일 9억원에 손바뀜이 이뤄졌다. 올해 공시가격 11억5000만원보다 2억원 가량 낮은 금액이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전용 84㎡도 지난달 19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올해 공시가격은 15억6300만~19억8500만원까지 책정됐다. 최고 공시가격보다 최대 3500만원 낮은 금액에 팔린 셈이다. 인근 ‘레이크팰리스’ 전용 84㎡도 지난달 말 17억9500만원에 거래돼 실거래 가격이 올해 공시가격(최고 18억2600만원) 밑으로 떨어졌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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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거래가와 공시가격 간 역전 현상이 일어나면서 조세 저항이 적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미 올해 국무총리실 산하 조세심판원에 접수된 종부세 불복 심판청구는 올 초부터 9월까지 3843건으로 전년(284건)보다 14배 가량 급증했다. 행정심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향후 종부세법을 둘러싼 소송 공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공시가격은 6월 기준으로 매겨지는데 연말까지 부동산 하락세가 예상되는 만큼 심리적 저항감이 커질 수 있단 게 업계의 중론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종부세는 원래 1%만 내던 부자세였지만 최근 집값 급등으로 많은 이들이 부담하게 됐다”며 “다만 집값 하락으로 인해 실거래 가격이 공시지가보다 낮을 경우 불만의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공시가격 현실화에 대한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 국토부와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이 개최한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관련 공청회’에선 기존 현실화 계획을 1년 유예하고 내년도 공시가격 현실화율 역시 올해 수준으로 1년 동결해야 한단 의견이 제기됐다. 조세연은 기존 현실화율 목표치(90%)를 80%로 낮춰야 한단 의견도 내놨다.

송경호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올해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지역별로 1년 전보다 평균 실거래가가 10% 이상 내린 사례가 다수 확인된다”며 “부동산 가격 하락기에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90%로 유지하면 1월 1일 자로 발표하는 공시가격이 연중 실거래가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조세연에 연구 용역을 발주한 국토부는 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 국토부는 공청회 논의 결과를 토대로 내년에 적용할 공시가 현실화율 이행 계획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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