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사상 최대 미분양, 세제·대출 완화 초점
“당시 대비 물량 적지만···선제적인 대안 마련해야”

청약시장 한파 속 건설사들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분양에 나설 경우 미분양이 불가피하고, 일정을 미루면 금리 인상으로 인한 금융 비용이 만만치 않아서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정부가 미분양 해소를 위한 규제 완화를 예고했다. 최근 미분양 증가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지면서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정부가 미분양 해소를 위한 규제 완화를 예고했다. 최근 전국적으로 미분양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커지자 대응책 마련에 나선 모양새다. 과거 미분양 문제가 심각했던 이명박 정부 시절처럼 전매제한과 대출·세제 등에서 전방위적인 규제 완화가 진행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전날 비상거시경제금융회의에서 “미분양 방지를 위한 규제 완화 등 부동산 PF 시장 전반에 대한 구체적 지원방안을 조속히 마련할 계획이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부동산 시장 침체로 미분양 물량이 늘면서 PF 대출 리스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지자 대응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통상 부동산 시장에선 사업 시행 전 우선 PF 대출을 일으키고 분양금과 중도금을 받아 이를 상환하는 식으로 사업을 진행한다. 증권사 등 금융사는 부동산 개발의 미래 가치를 보고 시행사에 자금을 미리 빌려준다. 만약 개발 사업이나 분양에 차질이 생기면 시행사, 시공사뿐 아니라 이들에게 대출을 해준 금융사도 줄줄이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미분양 물량은 올해 들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8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3만 2722가구로 지난해 말(1만 7710가구) 대비 84.8% 늘어났다. 같은 기간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미분양 주택은 1509가구에서 5012가구로 3배 넘게 늘었고, 지방은 2만7710가구로 1만 가구나 증가했다. 악성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도 7330가구에 달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금리 상승으로 부동산 투자 조달 비용이 증가하고, 원자재값 폭등으로 공사비 부담까지 겹쳐 수익성이 많이 낮아진 상황이다”며 “이런 상황에서 미분양이 장기화될 경우 투자금 회수가 어려워 중소건설사의 경우 줄도산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 그래픽=시사저널e DB

현재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카드론 세제 완화와 금융규제 완화가 우선 꼽힌다. 이미 지방 대부분 지역이 조정대상지역에서 해제된 만큼 추가 대책은 세재와 금융제재 완화로 압축될 가능성이 높다. 주택업계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경우 취득·등록세를 감면해 주고, 1주택자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할 경우 2주택자에서 제외해 양도소득세를 중과하지 않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조정이나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및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지난 8월 LTV 80% 상향, 생활안정자금 2억으로 완화 등 파격적인 완화를 시행했으나 사실상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에 한해서 완화된 조건이라 부동산 시장에는 별다른 변화나 조짐은 보이지 않았다. 기존 주택 보유자는 기존 LTV에 걸려 한도가 나오지 않았고 DSR은 3단계(대출 총액 1억원 초과 시 DSR 40% 적용)로 강화되며 이전보다 더욱 많은 소득이 필요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매입임대사업을 할 수 있는 요건을 완화하면서 매입임대사업자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대해주는 방안과 한국토지주택공사(LH) 정부가 미분양 주택을 매입하는 방안 등도 거론된다.

현재 시장에서 거론되는 규제 완화는 과거 효과를 본 정책들이다. 미분양 문제가 가장 심각했던 2008년 이명박 정부 시절에 시행된 적이 있다. 당시 집값이 7~8년 동안 급등한 이후 숨 고르기를 하고 있던 시기였는데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며 부동산 시장도 하락세로 전환했다. 시장이 과열되던 시기 마구잡이로 지은 아파트들이 지방 비인기 지역에서부터 소화가 안 되기 시작했다. 미분양 주택은 사상 최대인 16만 가구를 넘어섰다. 미분양 주택은 2006년에 이미 7만3000가구에 달하며 위기감이 고조된 상태였다. 집값이 급등했던 데다가 대출 규제 등의 영향으로 수요가 줄어든 영향이 컸다.

이명박 정부가 가장 먼저 내놓은 ‘6·11 지방 미분양 해소 대책’에선 1년간 지방 비투기지역 미분양 주택 매입 시 취득·등록세를 50%까지 깎아주고, 양도세가 면제되는 ‘일시적 1가구 2주택자’의 중복 보유 허용 기간도 1년에서 2년으로 완화했다. 분양가를 10% 내린 주택에 대한 LTV 상향 조정(60%→70%) 해주기로 했다.

이후 8·21대책(지방 미분양 환매조건부 매입, 수도권 전매제한 기간 완화(5~10년→1~7년)), 11·3 대책(지방에서 미분양 아파트 매입 시 양도세 중과 배제, 서울 강남3구 제외한 수도권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해제), 2009년 2·12 대책(서울 등 과밀억제권역을 제외한 지역 미분양 양도세 5년간 전액 면제) 등을 내놨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전국의 미분양 수는 2010년 하반기부터 10만 가구 이하로 줄었고, 2012년 말에는 7만 가구대를 기록했다.

업계에선 여러 악재가 겹쳤던 지난 2008년 수준까진 아니지만 미분양이 5만~6만 가구를 넘길 경우 위험성이 높은 만큼 선제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분양시장 분위기가 가라앉으면서 서울에서 미분양이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지방의 경우 규제지역 해제에도 미분양 현상이 심각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미분양 물량이 2008년의 5분의 1 수준이지만 최근 미분양 물량의 증가세가 가팔라지고 있어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