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값 폭락 계기 발의 법안, 전체회의서 민주당 강행 처리
눙경원 “쌀 수확기 가격 안정 도움, 수급조절 기능 약화”
與 “경쟁력 저하 포퓰리즘”···野 “정부 행동 촉진에 도움”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정부가 과잉 생산된 쌀을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를 통과했다. 법안을 두고 쌀 공급 과잉을 조장한단 비판과 농민 생활 안정을 위해 불가피하단 여야 의견이 엇갈리는 가운데 야당 주도로 강행 처리하면서 향후 법안을 둘러싼 논란이 더욱 가열될 것으로 예상된다. 

19일 국회 농해수위는 전체회의를 열고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전원과 윤미향 무소속 의원이 찬성표를 던진 가운데 여당인 국민의힘은 날치기 처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의힘 간사인 이양수 의원은 “쌀 시장 격리 의무화는 겉으로는 농민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쌀 산업을 망치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민주당은 일방적으로 법안을 날치기 처리하고, 문재인 정권의 쌀값 하락 책임을 한 무책임하게 전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민주당 간사인 김승남 의원은 “양곡관리법 관련 여러 제안을 했다. 쌀이 초과 생산되고, 쌀 재배 면적이 늘어나면 안전장치를 하자고 제의했으나 여당에선 생각도 않고 반론도 제기하지 않았다”며 “이번에 쌀값 폭락에도 정부 여당에서 가만 두면서 3000억원 정도면 될 것을 1조원까지 투입한 것은 윤석열 정부 책임”이라고 받아쳤다.

19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자 국민의힘 위원들이 소병훈 농해수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19일 국회에서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양곡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되자 국민의힘 위원들이 소병훈 농해수위원장에게 항의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현행법 가격 안정 미흡 지적에 추진···“농가 소득 안정, 수급 조절 약화” 분석

이번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최근 쌀값 폭락 사태를 계기로 추진됐다. 2021년산 쌀 가격이 생산량 증가 등의 영향으로 20% 가량 떨어지면서 정부는 현행 양곡관리법에 따라 쌀 가격안정을 위한 시장격리를 실시했다. 

하지만 가격안정효과가 제한적이었단 지적이 나오면서 국회에서는 생산량과 가격 등 시장격리 요건을 충족할 경우 초과생산량 전량 격리를 의무화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장격리 요건을 보면 생산량은 당해 생산량이 신곡 수요량 대비 3%를 초과할 경우, 가격 요건은 최근 5년 중 최대, 최소를 제외한 3개년 평균 대비 5% 하락했을 경우로 규정했다. 

법안은 초과생산량 매입 외에 식량자급률을 높이기 위해 벼 이외 타작물을 관리하기 위한 시책을 수립, 추진해야 한단 내용도 포함했다.

양곡관리법안은 장단점을 모두 내포하고 있단 분석이다. 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쌀 시장격리 의무화의 영향 분석’ 보고서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대로 시장격리를 의무화할 경우 쌀 농가의 소득 안정성이 제고되는 효과가 기대되는 반면, 수급 조절 기능 약화로 초과 생산량 규모 및 재정소요액이 증가할 것으로 진단했다.

농경원은 “벼 재배농가는 시장격리 의무화 시 수확기 수취 가격의 불안정성이 낮아져 소득 안정성이 제고되는 효과가 기대된다”며 “쌀 가격안정에 따른 수급 조절 기능 약화로 벼 재배면적 감소폭이 둔화되며 초과생산량 규모는 2022~2030년 기간 중 연평균 46만8000톤으로 베이스라인 전망치 대비 132.6%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초과생산량 증가로 시장격리 이행에 따른 재정 소요액은 이 기간 연평균 1조443억 원”이라고 전망했다. 

◇與 “공급과잉, 시장 기능 저해”···野 “정부 쌀 생산 조정 촉매 역할”

이날 전체회의에서도 여당 의원들은 쌀 초과 생산 및 재정부담이란 부정적 측면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이양수 의원은 “시장 격리 의무화는 재배 유인 증가로 쌀의 구조적 공급 과잉이 심화되는 쌀 과잉 공급법안”이라며 “시장 기능을 저해하고 증가된 쌀을 정부가 사야 하기 때문에 재정 부담이 가중되고 미래의 농업 투자가 감소되면서 경쟁력 저하가 악순환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쌀은 수요 감소에 비해 공급 감소 폭이 작아 평년작만 돼도 20만 톤이 과잉 공급된다. 소비가 줄어드는데 공급을 늘리는 법안은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벼는 타작물에 비해 재배는 쉬우면서 소독률은 높아서 진입이 쉬운 특성을 가진 품목이다. 격리 의무화로 판로 걱정이 줄면 벼농가는 계속해서 쌀을 증산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박덕흠 국민의힘 의원은 “2005년 이후 쌀을 매입하고 보관하는 데 세금이 약 5조 원가량 들었다”며 “매입한 쌀이 몇 년 지나면 주정용이나 사료용으로 헐값에 매각돼 국민 세금을 낭비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법안이 포풀리즘적이란 비판도 나왔다. 같은당 안병길 의원은 “양곡관리법은 양곡 공산화법이다. 문재인 정부의 무능을 덮기 위해 내놓은 가장 쉽고 단순하고 무책임한 법”이라며 “무, 마늘, 생강 등 쌀 아닌 다른 작물값이 폭락했을 때도 이렇게 법을 만들 것인가”라고 말했다.

쌀 시장 격리요건을 법으로 못 박으면 정책이 경직될 수 있단 주장도 있었다. 최춘식 국민의힘 의원은 “생산량의 3%, 가격의 5%란 식으로 법으로 규정하면 융통성이 없다. 만약 2.9%, 4.9%에 걸리면 법 때문에 안 된다고 할건가”라며 “융통성을 갖고 농민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야당 의원들은 농가 안정이란 긍정적 측면을 부각했다. 서삼석 민주당 의원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80%에 육박하는 농민들이 찬성을 하고 있다. 이들은 가장 약자란 점을 간과해선 안된다”며 “가격도 문제지만 쌀은 주식이고 생명산업이며 안보산업이기에 좀 더 차원 높게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법안이 정부가 쌀 생산 조정을 좀 더 적극적으로 하도록 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단 주장도 제기됐다. 같은당 윤준병 의원은 “시장 격리 의무화라고 돼 있지만 조건이 충족될 때 의무화가 실행되는 것”이라며 “의무화를 해 놓으면 의무화 요건을 충족시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정부가 생산 조정을 할텐데 그 내용을 담보할 수 있는 실효적인 기제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지금 정부에서 재배 구조, 재정지출이 심화된다고 하는데 거꾸로 이 법안은 재정지출을 최소화하는 법안”이라며 “정부로 하여금 농민들을 위해 진정으로 쌀값 안정을 기울일 수 있는, 오히려 강제하게 만드는 법”이라고 덧붙였다.

정부 자율에만 맡길 수 없단 지적도 있었다. 윤재갑 민주당 의원은 “전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게 쌀 시장 격리를 요구했지만 재정당국 핑계를 대며 하질 않았다. 지금 장관이라고 다를 수 있겠나”라며 “법으로 정해놓고 범위 안에 들어가면 정부가 행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날 농해수위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통과해야 효력이 발생한다. 법사위는 민주당이 과반을 점하고 있으나 여당이 위원장을 맡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