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경기 한 달 새 전세 매물 급증
세입자, 고금리에 월세 선호 늘어
집주인, 세입자 구하기 ‘별따기’
“추가 금리 인상 예고, 하락세 지속”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금리 인상이 가속화되면서 전세시장이 악화일로를 걷는 분위기다. 집주인들이 거래 절벽에 매매를 포기하고 전세로 전환하는 반면 세입자들은 이자 부담에 전세를 꺼리면서 매물 적체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매물이 쌓이고 전세가격이 빠르게 하락하면서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역전세난’은 물론 세입자의 전세 대출 이자를 내주는 ‘역월세’까지 등장했다. 추가 금리 인상까지 예고된 만큼 전세 시장의 침체의 골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18일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파트실거래가(아실)에 따르면 이날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4만4629건으로 지난달 동기(3만7559건) 대비 18%(7070건) 증가했다. 증가율은 경북, 제주, 경기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았다. 전세난이 예상됐던 7월과 비교하면 3개월 동안 46%(1만4149건) 늘어났다. 경기 역시 매물이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전세 매물은 전월 대비 19.6%(9979건) 증가해 6만842건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인천도 12.9%(1559건) 증가했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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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선 전세 매물이 증가한 배경을 두고 주택시장의 거래 절벽 현상이 심화되자 집주인들이 집 팔기를 포기하고 전세로 돌리는 경우가 많아진 영향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매매 물건은 감소 추세다. 서울 매매 물건은 5만8716건으로 전달 동기(6만335건) 대비 2.7% 줄었다. 3개월 전과 비교하면 낙폭(-6.5)이 더 컸다. 같은 기간 경기도 0.8%(12만210건→11만9360건) 감소했다. 전국에서 한 달 동안 매매 물건이 감소한 지역은 서울, 경기, 세종 등 3곳뿐이다. 인천은 2.7%(2만6573건→2만7295건)로 소폭 증가했다.

임대차 시장에서 고금리 여파로 전세 대신 월세 선호 현상이 짙어진 점도 전세 매물이 쌓이고 있는 요인으로 꼽힌다. 이미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 거래는 전세 거래를 넘어섰다.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달 확정일자를 받은 전국 월세 건수는 9월 둘째 주 기준 11만9536건, 전세는 10만6553건으로 집계됐다. 이 같은 현상은 지난 4월 월세 비중이 전세를 앞지른 이후 5개월 연속 이어지고 있다.

전세수요 대비 공급물량을 나타내는 전세수급지수도 하락 중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 수급지수는 6월 94.2, 7월 91.3, 8월 87.7을 기록하는 등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이 지수는 100을 기준으로 0에 가까울수록 집을 구하려는 세입자보다 세를 놓으려는 집주인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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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 하락세도 가파르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달 대비 0.22% 감소했다. 반면 전셋값은 0.41% 하락했다. 이달 들어서도 전셋값 하락폭(-0.13%)이 매맷값(-0.09%)을 앞지르고 있다. 그동안 매매가격이 전세 대비 상승과 하락폭이 컸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전세 시세가 계약 당시보다 하락해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역전세난’ 조짐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전용면적 84㎡의 경우 현재 전세 물건이 11억~12억원선에 형성돼 있다. 10억5000만원 짜리 급전세 물건까지 등장했다. 2년 전 2020년 10월 전세금이 최고 13억~14억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집주인들은 전세 만기가 도래하면 세입자에게 1억원 이상의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셈이다.

일부 단지에선 집주인이 되레 세입자에게 월세를 주는 역월세 현상도 벌어지고 있다. 역월세란 계약 당시보다 전셋값이 떨어진 상황에서 당장 새로운 세입자나 목돈을 구하지 못한 집주인들이 하락분에 대한 이자나 관리비를 내주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전셋값이 계약 당시 4억원에서 최근 3억원으로 하락했다면 차액 1억원에 대한 이자 수준으로 세입자에게 매달 20만~30만원을 주면서 계약을 연장하는 개념이다. 2019년 서울 송파구에서 9510가구에 이르는 헬리오시티 입주 당시 송파구는 물론 강동구 등의 전세금이 일시에 하락하면서 역월세가 단기적으로 확산한 적이 있었다.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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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이 지속되고 있어 전세 시장은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지난 12일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연내 추가 인상을 예고했다. 전날 오전 기준 은행권의 전세 대출 평균 금리는 최저 3.56%~최고 6.67%다. 기준금리 인상이 지속해 전세 대출 금리가 7.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선 전세가격이 최고점을 찍은 2020~2021년 사이 세입자를 받은 집주인이나 갭투자자들의 매물에서 역전세와 역월세가 속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집값 급등기에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 투자자들의 경우 한도가 막혀 전세퇴거대출도 받기 어려울 수 있다”며 “물가가 안정되고 금리 인상 기조가 바뀔 때까지 하락세가 예상되는 만큼 집주인들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내년 인천(8만2000가구) 등 대규모 입주를 앞둔 대도시의 경우 역전세난이 가시화돼 피해 보는 세입자들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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