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감사서 일감 몰아주기·전관예우 의혹 쏟아져
지난해 투기 사태 이후에도 개혁 의지 안 보여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최근 국정감사에서 밝혀진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민낯은 충격적이다. 지난해 일부 임직원의 ‘땅 투기 사태’로 국민적인 신뢰를 잃은 LH에 쇄신은 갈 길이 먼 얘기처럼 보였다. 퇴직자 일감 몰아주기부터 전관예우까지 LH의 태만과 비위가 양파껍질처럼 드러났다.

지난 4일 열린 국정감사에선 국토교통위 소속 의원들은 여·야 가릴 것 없이 LH의 혁신 노력이 부족하고 본연의 역할에 소홀하다고 지적했다. 먼저 LH 출신 고위직 퇴직자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문제에 질타가 이어졌다. 김학용 국민의힘 의원은 LH에 “LH 재직 때 기업 편의를 봐주고 그 대가로 퇴직 후 기업으로 자리를 옮겨 전관예우를 통해 일감을 따내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LH 퇴직자가 재취업한 6개 기업에서 최근 10년 동안 LH가 발주한 용역과 공사 계약으로 수주한 금액은 6353억원에 달했다. 또 퇴직자가 취업 또는 창업한 기업 등과 퇴직일로부터 2년 이내에 수의계약을 체결하지 못하도록 한 공기업∙준정부기관 계약사무규칙(기획재정부령)도 지켜지지 않았다.

LH가 3기 신도시 사업 시행사 선정 과정에서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 감정평가사 선정현황’ 자료를 분석한 결과 지난 정부에서 발표한 3기 신도시 사업시행자 심사에서 LH 출신 감정평가사가 속해있는 감정평가법인들이 대거 선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선정된 법인들은 객관적인 지표 평가에서 선정대상이 아니었지만 내부직원평가에서 만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아 사업시행자로 선정됐다는 설명이다. 내부직원평가에서 내부직원이 자의적으로 점수를 줄 수 있어 현직 LH 직원들이 LH 출신 감정평가사들을 의도적으로 밀어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관예우 의혹도 쏟아졌다. 서범수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LH 투기 사태 당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상임 이사 4명은 불과 5~7개월 만에 연봉 9039만원을 받는 LH대학교 교수로 임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정동만 국민의힘 의원도 “LH가 운영 중인 토지주택대학 교원 현황을 보면 임원 출신의 비전임 교수 6명이 1주일에 강의 2~6시간 하면서 매우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서 의원은 “3급 이상 퇴직자 604명 중 304명이 계약 업체에 재취업했다는데 LH는 이를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LH 임대주택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서민의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를 개선해야 할 LH가 집장사, 땅장사만 하고 있다”며 “LH는 공공임대의 탈을 쓰고 10년 분양전환 주택을 팔아 4조4000억원의 수익을 거두고, 공공주택용지 땅장사로 89조7165억원의 떼돈을 벌면서도 승인된 공공임대 물량마저 취소·변경하는 등 ‘공공임대주택 잔혹사’를 쓰고 있었다"고 질타했다. 이정관 사장 직무대행은 “저희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고 답했지만 이후에도 의원들이 질타는 이어졌다.

‘구성원들이 이야기하는 LH의 문제점은 무엇인가’라는 박정하 국민의힘 의원 질의에 이 대행의 대답을 들어보면 더 가관이다. LH에 개혁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이 대행은 “지난해 LH 투기 사건을 계기로 회사 전체적으로 명예가 실추되면서 직원들의 사기가 많이 떨어졌다”며 “다른 공공기관과 달리 본사도 진주에 있고 급여도 낮아서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다운돼있다”고 답했다. 이에 박 의원은 “평균 급여가 6500만원인데 임금이 적다, 본사가 지방에 있어서 사기 진작에 어려움이 있다고 말하면 개혁 결과가 요원한 것이다” 며 “생산적 논의는 없고 넋두리만 한 것 아니냐”고 비판했다.

이어 서병수 의원은 “최근 5년간 LH의 공공기관 청렴도는 5년 연속 4~5등급으로 최하위 수준이다”며 “그런데 2020년도 직원 성과급은 1인당 평균 1830만원이었고 사장은 1억원 넘게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모든 기업이 윤리경영을 강조하지만 LH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의원들이 폭로한 문제들을 살펴보면 저소득층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 배려해야 하는 LH공사의 설립 취지와 정면으로 배치된다. 노골적인 이익을 추구하고 편익을 도모하는 민간사업자가 해서도 욕먹을 일을 공사가 벌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이라도 무너진 공직 기강을 다질 필요가 있다. 진정성 있는 환골탈태를 하려면 직원들의 일탈과 불법행위, 오랜 관행 등을 뿌리 뽑을 수 있도록 엄중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뼈를 깎는 개혁이 없이는 내년 국정감사에도 똑같은 장면이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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