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검단·파주운정 등 본청약 포기 잇따라
분양가, 주변 시세 대비 수억원 저렴하지만
집값 하락 우려에 관망세로 돌아서“
“본청약·입주예정일 연기, 이탈 수요 늘어날 것”

/ 그래픽=시사저널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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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주택 조기 공급을 위해 도입된 ‘사전청약’ 열기가 한풀 꺾인 모양새다. 지난해만 해도 높은 경쟁률을 기록했지만 올해 들어 수도권 외곽을 중심으로 본청약을 포기하는 당첨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정부가 수도권 도심 중심으로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힌 데다 집값 하락세로 추정 분양가가 높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관망세가 짙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본청약일과 입주예정일도 미뤄지고 있어 이탈 수요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4일 분양업계 등에 따르면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인천검단AA21블록’ 본청약 실시 결과 사전청약 당첨자 811가구 중 491가구만 접수했다. 약 40%에 달하는 320가구가 계약을 포기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사전청약 평균 경쟁률이 ‘10.1 대 1’로 실수요자들의 관심이 많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저조한 신청률이다.

앞서 LH가 본청약을 실시한 ‘파주운정A23블록’(당첨자 835가구)과 ‘양주회천A24블록’(612가구)도 각각 50가구, 145가구의 미계약 물량이 발생했다. 두 블록의 분양가는 주변 시세보다 각각 1억원, 3억원 가량 저렴하다. 당첨만 되면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지만 청약 포기자가 대거 속출한 셈이다.

사전청약은 주택 공급 부족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도다. 본청약 대비 12~24개월 정도 먼저 사전청약을 진행해 무주택 실수요자들의 주택 구매를 지원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저렴한 분양가로 공급하기 위해 주로 수도권 외곽의 2·3기 신도시에서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7월 1차 공공 사전청약 경쟁률이 최고 ‘240 대 1’에 달할 정도로 도입 초기 시장의 반향은 컸다.

시장에선 올해 들어 분위기가 급반전된 것을 두고 당장 금리 인상 여파로 매수심리가 위축된데다 정부가 수도권 도심 중심으로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혀 실수요자들의 관망세가 짙어졌다는 분석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 8월 첫 번째 주택 공급 정책인 ‘국민주거 안정 실현방안’을 통해 수도권 도심·역세권 중심으로 주택 공급을 늘리겠다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발표로 2기 신도시 대비 입지가 더 좋은 곳에서 주택을 구매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커졌다”며 “부동산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고 윤 정부의 주택공급이 구체화될수록 이탈 수요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최근 집값이 하락 국면에 들어서면서 자칫 상투를 잡을 수 있다는 우려도 사전청약의 인기가 시들해진 요인으로 꼽힌다. KB국민은행의 월간 시계열 통계 자료에 따르면 수도권 평균 아파트값은 지난 6월(8억1055만원) 이후 3개월 연속 하락해 지난달 8억175만원을 기록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다음 달 8억원 선이 허물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한국부동산원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지난주(9월 26일 기준)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격은 0.25% 떨어져 2012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큰 폭으로 떨어졌다.

일각에선 최근 집값 하락세로 인해 추정 분양가가 주변 시세보다 높아지는 ‘시세 역전 현상’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사전청약에서 추정 분양가는 아파트 시세가 고점을 찍었던 지난해 주변 시세의 60~80% 수준으로 책정됐다. 지난 2019년 후보지 발표 이후 최초 입주까지 8~9년, 지난해 시행한 사전청약의 대상자들도 입주까지 5~6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점에서 당첨자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본청약과 입주예정일이 연기되면서 이탈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이종배 의원(국민의힘)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로부터 입수한 ‘사전청약 공급현황’에 따르면 올해 처음 본청약에 들어갈 사전청약 택지 8곳 중 양주회천A24∙파주운정A23 블록을 제외한 6곳(인천검단AA21, 위례A2-7, 성남복정A1·A2·A3, 부천원종B2)의 본청약이 당초 예정일보다 연기됐다. 입주예정일은 택지 8곳 모두 늦춰졌다. 파주운정A23블록의 경우 입주예정일이 2024년 10월에서 2026년 2월로 1년 4개월 늘어났다. 입주예정일이 지연됨에 따라 입주 때까지 무주택 자격을 유지해야 하는 입주예정자들이 자금 조달∙이사 등에 불편을 겪게 될 우려가 커졌다. 

한 분양업계 관계자는 “사전청약 제도를 처음 도입했던 이명박 정부 때도 사전청약에서 본청약까지 평균 4년, 최장 8년이 걸려 혼선이 많았다”며 “당시 당첨자 1만3000명 중 실제 입주한 사람은 5000명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이어 “추가 금리 인상과 경제 침체에 따른 부동산 경기 악화가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만큼 사전청약 시장도 타격이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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