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전 확전 조짐에 서방 대러제재 강화 조짐···러, 에너지 수출 중단 등 보복 공언
“동참시 러 네트워크 손상·민간협력 위축 가능성···수출통제·현지기업 자금경색 대비해야”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러시아가 추가 병력 투입을 시사하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이 확전 양상을 보이면서 국제사회가 러시아산 에너지에 대한 가격상한제를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할 조짐이다. 우리 정부도 도입 여부를 놓고 숙고에 들어간 가운데 주요 수출 산업과 현지 진출기업 등 향후 러시아가 보복조치를 취했을 때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들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단 지적이 나온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전날 러시아가 자국민 동원령을 내리는 등 우크라이나 전쟁이 장기전 양상을 띄고 있다. 이에 미국 등 서방진영을 중심으로 대러 제재를 더욱 강화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가장 유력한 카드는 러시아산 에너지 가격 상한제이다. 이미 주요 7개국(G7)은 러시아산 원유에 대한 가격상한제를 도입하기로 한 가운데 우리나라도 에너지에 대한 가격상한제 적용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우리 정부가 거절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그런데 러시아는 가격상한제 도입에 동참하는 국가에는 원유와 가스 등을 수출하지 않겠다며 보복을 공언하고 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2일 유엔총회에서 국제사회 지원을 요청하는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국제사회 지원을 요청하는 화상 연설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정부, 美옐런 방한 이후 상한제 면밀 검토 중···제제 동참시 대러 민간협력 위축 가능성

일단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지난 7월 기획재정부에서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 방한 당시 검토할 용의가 있다고 밝힌 이후 보다 상세하게 검토하고 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이 내부적으로 결정된 부분은 없다”며 “G7이 만나서 합의는 했지만 가격 상한이 얼마고 어떻게 결정되고 이행될 지에 대한 내용은 아직 안나왔기에 다양한 시나리오들을 계속모니터링 하면서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보복조치를 취했을 때 우리가 받을 타격에 대한 부분도 살펴보고 있단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러시아가 자국산 원유 가격상한제 등 제제에 동참한 특정 국가에 초점을 맞춘 제재를 고려할 순 있겠지만, 그 특정국가가 우리나라가 될 가능성은 낮다고 분석한다. 러시아 입장에서 우리나라가 독일이나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 만큼 중요성이 큰 국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나라가 러시아와 경제협력을 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보복조치가 본격화할 경우 우리나라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기업가들이 대러투자로 여러 성과를 거둔 상황에서 양국관계가 악화하면 민간 협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단 관측이다.

정민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러시아가 권위적 정치체제다보니 소수 엘리트 그룹이 결정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데 이런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마이너스가 될 경제, 통상 정책을 취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더 큰 문제는 러시아 일반인의 인식”이라고 말했다. 

현재 러시아에서 한국 기업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좋은데, 이게 단기간에 쉽게 변하진 않겠지만 양국 협력이 부진해지면 일반인들의 인식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 위원은 다만 “(우리나라가 대러제재에 동참했을 때) 종합적 측면에선 부정적 효과가 있을 수 있다”며 “그러나 이것 외에 정치, 국제관계 여러 거시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러시와 외에도 협력국가들이 많다”고 말했다.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자동차 등 수출품·현지기업 피해 대책 필요···“현지기업, 루블화 자산 줄여야”

대러제재로 예상되는 피해는 대러교역 상황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러시아는 우리 수출의 약 1.6%, 수입의 2.8% 비중을 차지하는 세계 10위 교역대상국이다. 교역비중 순위는 20년 전인 2000년 21위에서 크게 상승했다. 수출품목은 자동차·부품(40.6%), 철구조물(4.9%), 합성수지(4.8%) 등이 전체 러시아 수출의 절반을 차지한다. 수입 품목은 나프타(25.3%), 원유(24.6%), 유연탄(12.7%), 천연가스(9.9%) 등 에너지 수입이 70% 이상을 차지한다.

대러시아 해외직접투자는 절반 이상이 제조업에 집중돼 있다. 제조업 중에는 자동차(60.5%), 의약품(10.5%), 식료품(10.5%) 등이 주를 이룬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 포스코, 아모레퍼시픽, 오리온 등 우리기업 40여개사가 러시아에 진출해 있다. 

이에 따라 대러제재 강도가 높아지면 국내 기업이 들어가있는 자동차와 자동차부품, 화장품, 합성수지 등을 중심으로 타격이 예상된다. 

정 위원은 “러시아는 리스크적 측면에서 대기업 위주로 진출해왔는데 투자를 통해 생산기반을 확고하게 만들어놓은 성과가 있었다”며 “특히 네트워크 같은 비공식제도가 러시아 경협에 있어 중요한데 이런 보이지 않는 부분을 우리 기업들이 잘해왔는데 대치상태가 계속되면 이런 비가시적인 성과들이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는 “러시아 연관 업체들은 이 상황이 당장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자산, 결제 대금, 수출 바이어 등 정리하는 움직임이 있다. 원자재값 등 전쟁으로 인한 직접적인 부분도 문제지만 환율, 물류비에 대한 고민이 가장 크단 분위기”라고 말했다.  

현지 진출기업과 수출기업에 미칠 파장에 대비해야 한단 지적이다. 김꽃별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전쟁이 진행되면서 원유와 공급망 등 전쟁으로 파생된 문제가 계속 심화되고 있다. 더 대응하기 어렵고 좀 더 장기적 여파로 전환됐다”며 “향후 수출 통제에 대비해 주요 부품의 재고 확충, 부품 공급처 다양화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출기업은 현지 바이어 신용조사를 강화하고 외상거래나 추심거래 축소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며 “현지진출 기업은 루블화 자산을 줄이고 자금 경색에 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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