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적으로 수월한 주담대···이자장사 비판의 원인
시중은행, 가능성 있는 중소기업 선별 능력 가장 커
복잡하고 까다로운 '생산적 금융'에 더 집중해야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앞으로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내주지 않는 것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가 최근 은행에 대해 일고 있는 ‘이자장사’ 비판을 두고 한 말이다. 대형 시중은행은 역대급 실적을 거뒀지만 동시에 사회적으로 받는 비판의 수위도 역대급이다. 코로나19 위기로 서민들은 고통을 겪고 있지만 은행은 손쉬운 ‘이자장사’로 과도한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것이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은 올 상반기에만 약 15조의 이자이익을 거뒀다. 사상 최대 규모다. 

시중은행의 이자장사가 도마에 오르게 된 이유 중 하나론 주담대가 꼽힌다. 시중은행이 주담대로 비교적 수월하게 건전성·수익성을 모두 챙길 수 있었다는 비판이다. 주담대는 기업금융보다 상대적으로 대출 업무가 단순한 편이다. 주담대는 금리 수준은 높지 않지만 대출 규모가 커 은행 입장에선 ‘박리다매’로 이익을 늘릴 수 있다. 담보물이 확실해 손실의 위험도 적다. 시중은행의 ‘저위험저수익’ 모델을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과거 국내 은행은 기업금융 중심의 사업 모델을 가졌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면서 재벌 기업의 줄도산과 함께 대형 은행도 잇달아 쓰러졌다. 은행은 살아남기 위해 주담대 등 개인대출을 늘려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그 결과 대형 시중은행은 대출 포트폴리오가 비슷해졌다. 개인대출이 전체 대출잔액의 50% 내외를 기록하고 나머지는 기업대출이 차지하는 구조다. 과거 기업금융으로 이름을 날렸던 한일·상업은행을 뿌리로 두고 있는 우리은행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시중은행은 이제 금융권의 ‘맞형’의 위치를 확고히 한 상태다. 시중은행이 주담대로 돈을 버는 것은 이자장사 비판에 직면할 수 있는 것은 물론 금융산업 전체 발전에 있어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만만치 않다. 시중은행은 심사가 까다롭고 전문 지식이 더 많이 필요한 기업금융에 집중하고, 주담대는 상대적으로 리스크 관리의 능력이 떨어지는 제2금융권이 맡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생산적 금융’의 측면에서 시중은행의 사업 구조의 재편의 필요성은 더 설득력을 얻는다. 침체된 우리 경제가 다시 활력을 찾으려면 혁신적인 기술을 가진 기업이 급성장하는 사례가 늘어야 한다는데 이견은 없다. 이를 위해선 기술은 있지만 자금이 없는 중소기업 혹은 스타트업을 찾아 자금을 지원해주는 것이 가장 급선무다. 

국내 금융사 가운데 기업들의 ‘옥석’을 정확하게 가릴 수 있는 곳은 시중은행이다. 시중은행은 이미 고도의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했고 수십 년간 쌓아온 심사 노하우도 보유하고 있다. 관련 전문가도 넘친다. 불확실해 보이는 기업 재무구조 속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역할을 가장 잘 할 수 있다.

물론 당장 시중은행이 주담대 사업을 대폭 줄이거나 중단하는 건 일어나기 어려운 일이다. 시중은행도 민간 기업이다. 국가가 직접 개입해 수익이 나는 시장에서 기업을 철수하게끔 강제하는 것은 자유시장경제 체제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국가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공공의 목표’를 고려하면 점진적으로 시중은행의 사업 구조를 재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는 ‘금융은 국가경제의 두뇌’라고 표현한 바 있다. 어떤 곳에 자금이 투입돼야 최대의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금융이라는 의미다. 시중은행은 국내 금융권에서 가장 고도화된 두뇌다. 복잡하고 까다롭지만 국가 경제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업금융, 생산적 금융에 더 집중한다면 현재 부정적인 여론은 ‘칭찬’으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