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업장 돌며 직원들과 격 없는 적극 소통에 많은 시간 할애···사장단 회의 강조되던 과거와 달라져
제왕적 총수경영 종결 및 젊은 직원들과의 소통 중요성 강조되는 최근 세태 보여준다는 평가

지난 달30일 송파구 신천동에 위치한 삼성SDS 잠실캠퍼스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지난 달30일 송파구 신천동에 위치한 삼성SDS 잠실캠퍼스를 방문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직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광복절 사면을 받은 지 한 달이 됐다. 짧은 기간이지만 국내외를 돌며 사업장을 점검하는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데, 특히 직원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스킨십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 재계의 눈길을 끌고 있다. 직원들은 소셜미디어에 ‘재드래곤(이재용 부회장의 인터넷상 별명)’을 만났다고 게시글을 올리는 등 긍정적 반응을 내놓는 모습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12일 사면 복권 받아 자유로운 경영활동이 가능해졌다. 그동안 가석방만 받은 처지라 사실상 전면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는데, 정권이 바뀌고 사면을 받게 된 후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면 후 이 부회장의 사실상 첫 공식일정은 같은 달 19일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열린 차세대 반도체 R&D단지 기공식 참석이었다. 특히 이날 눈길을 끌었던 것은 사장단 회의와 별개로 직원들과 소통하는 모습이었다. 이 부회장은 직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직원 요구에 부응해 직원가족과 영상통화를 하는 등 형식을 넘어 적극적으로 소통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후 이어진 직원들의 기념촬영 요구에도 흔쾌히 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부회장은 5일 후인 지난달 24일에는 서울 강동구 상일동 삼성엔지니어링 글로벌엔지니어링센터(GEC)를 깜짝 방문했는데, 이때도 자신을 환영하는 직원들에게 반갑게 손을 흔들고 함께 사진을 찍고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행보를 이어갔다. 비밀스럽게 사업장을 방문해 핵심 임원들과 회의하고 아무도 모르게 빠져나가는 과거 오너들의 모습과 대조되는 모습이다.

이어 지난달 30일 이 부회장은 삼성 SDS 잠실캠퍼스 현장을 찾았다. 역시나 그간 해오던 사업장 점검이었지만 이번 일정도 주인공은 사장단이 아닌 직원들이었다. 이 부회장은 이날 30~40대 워킹맘 직원들과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한 시간 넘게 자유로운 대화 시간을 가졌다.

이 부회장은 직원 요청에 스마트폰으로 “어머니가 삼성SDS라는 회사에서 정말 중요하고 남들에게 도움이되고 사회가 좋아지는 일을 열심히 하셔서 ㅇㅇ이랑 같이 못 놀아 주는 거야. 건강하고 착하고 곧바르게 자라야 돼. 안녕”이라는 영상을 남겼다. 

또 부모님께 글을 남겨달라는 직원에게는 장문의 글을 써주는가 하면 Z플립폰을 갖고 자유롭게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10일(현지 시각) 삼성엔지니어링 도스보카스 정유공장 건설 현장을 찾아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10일(현지 시각) 삼성엔지니어링 도스보카스 정유공장 건설 현장을 찾아 직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삼성전자

이러한 행보는 해외에서도 이어졌다. 이 부회장은 추석 연휴기간 멕시코를 방문해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을 만나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지원을 요청했는데, 이때도 삼성전자 케레타로 가전 공장 및 삼성엔지니어링의 도스보카드 정유 공장 건설 현장을 찾아 임직원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는데 공을 들였다. 이 부회장은 멕시코 현지의 워킹맘들이 육아와 업무를 어떻게 병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이고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하께 식사하며 대화를 나눴다.

이 부회장은 이전에도 사업장을 방문하며 직원들과 간단한 간담회 등을 가진 적이 있지만, 최근 한 달 행보를 보면 이전과 확실히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사장단 회의보다 직원들과의 소통에 더욱 비중을 두는 모습이고, 단순히 형식적인 수준을 떠나 적극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나서고 있다는 평가다. 한 삼성 내부 직원은 “과거엔 이 부회장이 회사를 다녀가든 어쩌든 나와 무관한 일로 여겨졌고,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의 이 같은 모습은 크게 세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우선 과거 1세대 오너들처럼 ‘은둔형 오너’와 같은 모습은 더 이상 재계에선 환영받지 못하게 됐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재계 세대교체가 이뤄지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 회장 등 역시 직원들과 격 없는 소통에 나서려 애쓰는 모습을 보인 바 있다. 한 대기업 인사는 “해외 경험이 많은 총수들은 이미 제왕적 모습에 대해 본인들 자체도 어색함과 반감을 느낀다”며 “이 부회장이 경영일선에 나선 후 총수 의전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한 가지는 시대적으로 직원들과 소통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젊은 직원들은 특히 회사에 대한 생각과 내부 현실을 플랫폼 등을 통해 가감 없이 공유하고 있다. 또 내부적으로도 오너를 ‘제왕적 총수’로 바라보기보다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고 부담 없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직을 손쉽게 생각하는 풍토 속 우수인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오너가 직원들과 직접 소통하는 모습을 보일 유인이 강해졌단 분석이다.

이와 더불어 부회장이 오래 회사를 비우다시피 한 상황이어서 직원들과 소통할 필요성이 더욱 커졌다는 분석도 있다. 한 대기업 인사는 “지난 몇 년간 사실상 삼성전자는 사실상 오너의 존재감을 느끼기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 “직원들과 직접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내부는 물론, 대외적으로도 이 부회장이 다시 삼성경영 일선에 서게 됐다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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