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최장·세계서 두 번째로 긴 재위 군주
바이든·마크롱 대통령 등 각국 지도자들 애도

사진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99년 방한 당시 서울미동초등학교에서 환영을 받는 모습 / 사진 = 연합뉴스
사진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99년 방한 당시 서울미동초등학교에서 환영을 받는 모습 / 사진 = 연합뉴스

[시사저널e=김용수 기자] 70년간 영국을 통치해온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96세 나이로 서거했다. 왕위 계승권자인 여왕의 큰아들 찰스 왕세자가 국왕의 자리를 이어받아 ‘찰스 3세’로 즉위했다. 각국 정상 등 전 세계에서 추모가 이어지고 있다.

8일(현지시각) 영국 왕실은 "여왕이 이날 오후 스코틀랜드 벨모럴성에서 평화롭게 세상을 떴다"고 밝혔다. 영국 정부는 '런던브리지 작전'으로 명명된 여왕 서거 시 계획에 따라 서거 후 10일째 되는 날 국장을 치른다.

여왕은 예년처럼 밸모럴성에서 여름휴가를 보내던 중 급격히 건강이 악화하며 결국 눈을 감았다. 불과 이틀 전인 6일 웃는 얼굴로 신임 총리를 임명하며 비교적 건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하루 뒤인 7일 오후 왕실은 여왕이 의료진의 휴식 권고로 저녁 일정을 취소한다고 밝혔고, 서거 당일 정오께 여왕의 건강에 중대한 이상이 생겼단 의료진의 소견을 전했다.

여왕은 지난해 4월 남편 필립공을 떠나보낸 뒤 급격히 쇠약해진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해 10월 하루 입원을 하고 올 초엔 코로나19에 감염되기도 했다. 최근엔 간헐적인 거동 불편으로 지팡이를 짚고 일정이 임박해 취소하는 일이 잦았다.

여왕의 서거 직후 찰스 왕세자가 국왕 자리를 자동 승계해 찰스 3세로 즉위했다. 찰스 3세 부부는 이날 밸모럴성에 머문 뒤 9일 런던으로 옮긴다.

찰스 3세는 성명에서 “친애하는 나의 어머니 여왕의 서거는 나와 가족들에게 가장 슬픈 순간이다. 우리는 소중한 군주이자 사랑받았던 어머니의 서거를 깊이 애도한다”며 “애도와 변화의 기간, 우리 가족과 나는 여왕에게 향했던 폭넓은 존경과 깊은 애정을 생각하면서 위안을 받고 견딜 것”이라고 밝혔다.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는 이날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연설하며 “여왕은 세계인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며 깊은 애도를 표했다.

그는 “여왕은 바위였고 그 위에서 현대 영국이 건설됐다. 여왕은 우리에게 안정감과 힘을 줬다. 여왕은 바로 영국의 정신이었고, 그 정신은 지속될 것”이라며 “우리는 찰스 3세 국왕에게 충성심과 헌신을 바친다”고 강조했다.

사진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99년 방한 당시 안동 봉정사를 방문해 스님들과 대화하는 모습 / 사진 = 연합뉴스
사진은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999년 방한 당시 안동 봉정사를 방문해 스님들과 대화하는 모습 / 사진 = 연합뉴스

여왕의 서거에 각국 전·현직 정상, 프란치스코 교황 등 주요 인사들도 애도를 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여왕은 미국과 영국의 동맹을 강화한,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위엄과 불변의 정치인이다. 군주를 넘어 시대를 정의했다”며 “여왕의 유산이 영국 역사와 전 세계사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여왕은 70년 넘게 영국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구현했다”며 “그를 프랑스의 친구이자, 영국과 한 세기에 길이 남을 따뜻한 마음을 가진 여왕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프랑스 수도 파리는 여왕 서거에 대한 애도의 표시로 이날 밤 에펠탑 조명을 껐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도 “여왕은 수백만 명에게 모범이었고, 영감을 줬다”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과 영국의 화해를 위한 그의 노력을 잊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훌륭한 유머가 그리울 것”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찰스 3세에게 보낸 전보에서 “여왕은 아낌없는 봉사의 삶을 살았다”며 “의무에 헌신한 본보기이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확고한 증인”이라고 경의를 표했다.

여왕은 영연방 국가를 순방 중이던 1952년 2월 6일 아버지 조지 6세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25살 젊은 나이에 케냐에서 왕위에 오른 뒤 70년 216일간 재위했다. 영국 최장 재위 군주일 뿐 아니라,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 통치한 군주란 기록을 세웠다. 독립국 군주 가운데 최장 재위 군주는 72년간 통치한 프랑스 루이 14세다.

여왕이 재위한 70년간 15명의 총리가 거쳐 갔다. 이 기간 영국은 전후 궁핍한 세월을 견뎌야 했고 냉전과 공산권 붕괴, 유럽연합(EU)의 출범 및 영국의 탈퇴 등 격동이 이어졌다. 여왕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 않았지만, 국가 통합의 상징으로서 국민의 단결을 끌어내는 데 기여한 역할로 국민의 존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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