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적 공지로 마차 시위에서 환불 요구까지 이용자 화 키워

[시사저널e=이하은 기자] 도서관에서 복사하기 위해 긴 줄이 서있는 상황에서 줄을 서지 않고 먼저 복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죄송합니다만, 10장을 복사해야 하는데 먼저 하면 안될까요?”라고 물었을 때 60%가 부탁을 들어줬다고 한다. 말을 바꿔서 “죄송합니다만, 10장을 복사해야 하는데 먼저 하면 안될까요? 왜냐하면 급한 사정이 있어서요”라고 말했을 때는 성공률이 94%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미국 심리학자 랭거 교수가 발표한 유명한 실험 내용이다. 사람들은 무작정 들이대는 부탁을 불쾌하게 생각한다. 반면, 이유를 말해주면 존중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에 반발심 없이 수용한다는 게 핵심이다. 

최근 카카오게임즈의 ‘우마무스메: 프리티 더비’ 운영과 관련해 위의 실험 내용이 떠올랐다. 평점 테러를 시작으로 마차 시위, 트럭 시위, 환불 소송에 이르기까지 이용자들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모양새다. 

우마무스메 이용자들은 지난달 29일 카카오게임즈 본사가 위치한 판교 한복판에서 실제 마차가 1.2km를 도는 시위에 이어 지난 1일에는 국회 앞에서 트럭시위를 진행했다. 카카오게임즈가 세 차례 사과문을 올렸지만, 이용자들은 ‘최후통첩’을 선언하며 단체 행동 및 환불 소송을 예고하며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이는 하나의 사건이 아닌 운영 과정에서 누적된 불만이 사태를 키웠다. 카카오게임즈 측은 우마무스메를 운영하면서 중요 콘텐츠 업데이트 직전에 공지를 올렸고, 일본과 비교해 아이템 수령기간을 단축하고, 재화를 적게 지급했다. 

문제는 일본 서버와 다르게 운영하는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단 점이다. 이용자들이 소통을 강조하고 이유를 설명하라고 요구하는 까닭이다. 이용자들이 발표한 성명문에서 눈에 띄는 사항 중 하나는 ‘게이머’가 아닌 ‘소비자’로 표기한 점이었다. 즉, 고객으로서 존중해 달라는 요구인 셈이다. 

물론 카카오게임즈 입장에서 억울한 측면도 있다. 직접 퍼블리싱한 게임이 아닌 일본 개발사 사이게임즈와의 조율이 필요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카카오게임즈가 올린 공식 사과문에도 대응이 늦어진 배경에 대해 사이게임즈와 게임에 대한 모든 사항에 대해 협의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결국 이용자의 요구대로 지난 3일 조계현 대표가 사과문을 올렸다. 또한 이용자와의 간담회 개최도 약속했다. 업계는 이용자의 참여가 게임의 성패와 직결되는 만큼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게임의 성공은 개발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장기 흥행에는 빠른 피드백과 투명한 운영 등 서비스가 중요하게 작용한다. 최근에는 탈중앙화로 대표되는 웹3.0이 떠오르면서 게임업계 이용자의 인식과 위상이 달라졌다. 

이용자들은 시스템 점검, 콘텐츠 업데이트 등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왜 그래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개발사가 이용자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운영 능력이야말로 개발 능력만큼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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