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6 발표에선 규제완화 윤곽만 드러내고 세부안은 ‘추후 발표’
고가아파트 밀집지, 부담금 완화수위 민감도 높아···방향만으로 선뜻 사업 나서지 않아 당분간 잠잠할 듯
재초환 국회법 개정 통과 여부도 관건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민주거안정 실현방안인 주택공급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16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실에서 국민주거안정 실현방안인 주택공급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노경은 기자] 정부가 8·16 주택공급 대책을 통해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이하 재초환)와 안전진단 완화 추진계획을 발표했지만 당장 투자자가 유입되며 시장이 크게 동요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윤곽만 드러냈을 뿐 세부안은 추후로 미뤄둬서다. 특히 정부는 이날 발표에서 수요가 충분한 도심에 공급을 늘리겠다고 했는데, 도심 내 고가아파트 밀접지는 재초환 분담금 완화수위에 대한 민감도가 여느 지역보다도 높아 사업을 선뜻 추진하긴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재초환은 국회법 개정 통과 여부가 관건인 만큼 전문가들은 추후 공개될 세부안에 따라 시장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16일 윤석열 정부는 취임 100일을 하루 앞두고 국민 주거 실현방안이라는 주제로 향후 5년 간 전국에 270만호의 주택 인허가를 내주겠다는 내용의 공급대책을 발표했다.

정부는 국민의 선호도가 높은 도심 내 내집마련 기회 증대를 위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정상화를 위한 규제를 완화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와 함께 재건축 3대 대못으로 불리는 재초환과 안전진단을 완화하겠다는 것이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수원 A 아파트의 가구당 재건축 추가분담금은 2억9000만원, 대구 B단지는 1억6000만원, 창원 C단지는 1억원 등으로 추산됐다. 이에 별도의 소득이 없는 1주택 고령자 등의 부담이 커지며 조합 내 갈등이 격화됐다. 다만 재초환은 지난 2006년 도입됐음에도 미실현 이득에 대한 법적논쟁과 재건축 정상화를 이유로 수차례 유예돼왔다.

이에 정부는 부담금 면제 금액을 상향하거나 부과율 구간 확대를 추진해 조합원이 실제 내는 금액이 낮아질 수 있도록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재초환 규제완화책으로 ▲재건축 사업의 개시시점이 추진위원회 승인일에서 조합설립인가 시점으로 변경 ▲장기보유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입법적 배려 등이 고려된다. 예를 들어 1세대 1주택자의 경우 조합원 1인당 재초환 기준금액이 현행 3000만원에서 1억원으로 상향하거나, 3000만원 초과부터 초과이익 구간별 부과율을 낮추는 형태가 되는 것이다.

다만 세부 감면안은 미정이다. 국토부는 다음달 중 발표하고, 발표 직후 재건축이익환수법 개정안을 발의한다는 방침이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재건축 초과이익이 큰 강남이나 한강변 재건축 단지들은 부담금 완화 수위에 대한 민감도가 예민하다”며 “재초환 법안 통과 여부, 규제완화 수준에 대한 국회 논의과정 등을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부담금 1억원 이하 단지는 이번에 부과 면제 대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커졌지만 부담이 큰 단지에서는 자칫 빛 좋은 개살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김효선 NH농협은행 WM사업부 부동산 수석위원 역시 “추후 세부안에 따라서 지방이나 강북권 소형 재건축 단지는 부담금이 면제되는 효과도 기대할 수는 있을텐데 규제 완화가 재건축 아파트 가격을 자극할 수 있고, 반대로 시장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하면 민간 주도의 공급 활성화라는 모토 자체가 퇴색될 수 있어 어느 정도 수위로 합의가 될지가 관건”이라고 밝혔다.

재건축 부담금 손질은 정부안이 확정되더라도 최종적으로는 국회에서 통과가 돼야 한다. 문제는 169석을 보유한 더불어민주당은 재초환 감면에 대해 부정적 견해가 다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안전진단 규제 완화도 재건축 활성화에 도움을 주지만 아직은 세부안이 미정이다. 재건축 안전진단 통과의 핵심 변수는 구조안전성 가중치 기준인데, 이 비율이 높으면 통과가 어렵고 낮으면 통과가 수월해 부동산정책 방향에 따라 이 수위를 조정해 재건축 추진 첫 관문을 조절했다.

정부는 현 구조안전성 비중 50%(주거환경 15%, 시설노후도 25%, 비용분석10%)에서 구조안전성 항목 가중치를 낮추고 주거환경 가중치를 높여 재건축 사업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할 방침이다. 주거의 편리성과 쾌적성에 중점을 두며 구조안전성을 낮추겠다는 차원인 것이다. 이는 법 개정 없이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즉각 시행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세부안은 연말 이전에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한 부동산업계 관계자는 “안전진단 규제 완화는 재건축을 시작할 수 있는 진입장벽이 낮아진다는 의미는 있지만 재초환과 분양가상한제가 조합원에게는 더 민감하다”며 “여전히 이 부분이 여전히 수익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아 사업에 속도를 내기에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이날 국민 주거안정 실현방안으로 ▲도심공급 확대 ▲주거환경 혁신 및 안전 강화 ▲공급시차 단축 ▲주거사다리 복원 ▲주택품질 제고 등의 내용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신규정비구역 지정 확대 ▲15만가구의 신규 택지 후보지 순차 발굴 ▲신도시 광역교통 맞춤대책 ▲민간공급 절차 단축 추진 계획 등을 내놓았다. 발표된 첫 주택공급대책 전반과 관련해선 전문가들은 세부안이 없어 아쉽다는 반응이지만 로드맵으로서의 역할에는 대체로 긍정적 입장을 보였다.

김덕례 주택산업연구원 주택정책연구실장은 “당장 정부가 발표한 건 그동안 문제가 됐던 공급 부분에 초점을 맞춰 마련한 로드맵”이라며 “이런 차원에서 큰 틀이 짜진 것인데 긍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공공이 일방적으로 정비사업지역을 지정하는 것이 아니라, 사업추진을 희망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구역지정을 확대하는 것은 시장수요에 맞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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