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대만 문제로 갈등 격화···정부, 반도체 지원 강화 속 칩4 가입 신중모드
당정 내부에선 칩4 가입 불가피 기류···“한국 칩4 가입하면 중국에도 유리”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우리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반도체 공급망 동맹(칩4)에 참여할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중갈등이 격화하면서 미국과의 반도체 동맹이 중국을 자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당정은 기본적으로 칩4 가입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국이 반도체를 구할 국가가 사실상 우리나라와 미국 밖에 없단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칩4 가입은 오히려 중국에 도움이 된단 분석도 나온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이 대만을 방문하면서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TSMC의 류더인 회장과 면담을 가졌다. 이에 이른바 칩4 동맹이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이달 중으로 칩4 가입여부를 회신해달라고 요청한 상태다.

칩4는 미국 정부가 우리나라와 일본, 대만과 함께 구축하려는 반도체 공급망 네트워크이다. 반도체 설계 강국인 미국, 반도체 생산 강국인 우리나라와 대만, 반도체 소재, 부품 분야 강국인 일본을 하나로 묶는다는 구상이다. 동맹국과 안정적인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고 반도체 패권 경쟁을 벌이는 중국을 견제하려는 목적을 갖고 있다. 

중국은 미국과 긴장 수위를 높이고 있다. 펠로시 의장의 대만 방문 기간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위배했단 이유로 주중 미국대사를 초치해 절대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인민해방군은 이날부터 7일까지 대만섬을 4면에서 둘러싼 군사훈련에 돌입했다. 

이에 우리 정부의 반도체 통상 환경이 더욱 험난해지는 모양새다. 정부는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중요성을 강조하며 반도체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여당도 최근 반도체 산업 규제 개혁과 인력 양성, 세제 지원 방안 등을 담은 반도체특별법(국가첨단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 개정안을 공개하며 보조를 맞추고 있다.

다만, 당정 모두 칩4 가입 여부에 대해선 언급을 아끼는 상황이다. 정부는 펠로시 의장 방한 기간 윤 대통령과 면담 일정은 잡지 않고 이날 전화 통화만 할 계획이다. 미국 의전서열 3위인 하원의장이 우리나라를 방문했는데 대통령을 만나지 않은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중국을 염두한 결정이란 분석과 함께 정부 내 고심이 크단 관측이 나온다.

중국은 우리나라 반도체 주요 수출국이다. 지난해 반도체 수출액 1280억 달러 중 중국 수출은 502억 달러로 39%를 차지했다. 홍콩을 포함하면 비율은 60%로 올라간다. 수입 의존도도 상당하다. 부품 등 중간재 품목 중 중국산 비중은 대부분 절반 이상이다. 이에 칩4 동맹이 중국을 자극해 과거 사드 사태 같은 보복을 부르면 우리 경제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단 우려가 일각에서 제기된다.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당정은 대체적으로 중국을 자극해선 안 되고 칩4가 구체화하기 전 섣부른 결정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양자택일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가입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기류이다. 윤 대통령도 칩4동맹 가입의 불가피성을 보고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우리 정부에 이달까지 칩4 참여 여부를 확정해달라고 요청해 놓은 상태다.

여권 관계자는 “반도체 관련 기술 중 설계 등 미국 우위에 있는 게 많다”며 “다만, 중국 시장을 무시할 수 없기에 중국과 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지를 고민해가면서 미국과 협업을 해 나가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산업 지형을 봤을 때 미국이 압도적인 면이 있기에 칩4 가입을 미국이 원했을 때 가입하지 않는다면 잃는 부분이 크다”고 했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우리나라가 칩4에 가입하더라도 중국이 반발한 가능성은 낮단 관측을 내놓는다. 우리나라가 칩4에 들어가지 않아 반도체 산업이 위축되면 중국에 실리적으로 도움될 게 없단 것이다. 현재 중국이 칩4 가입에 불편한 기색을 보이는 것은 정치적 제스처란 분석이다.

안도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우리나라가 칩4에 안 들어가 장비, 소재 공급을 받지 못해 생산시설이 위축 되면 반도체 생산이 줄어들게 된다”며 “그러면 줄어든 반도체 생산시설은 미국이 가져가게 된다. 중국 입장에선 우리나라가 반도체를 공급하는 게 미국이 공급하는 것보다 좋다”고 말했다. 

현재 중국은 반도체를 자급하지 못하고 우리나라에서 반도체를 구입해 쓰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공급을 하지 못하면 중국은 미국에서 반도체를 받아 써야 한다. 안 전무는 “우리가 칩4에 들어가 생산 시설이 안정화될수록 중국은 훨씬 유리하다. 중국이 지금 불만을 표하는 것은 반도체 산업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슈 때문”이라며 “우리나라 반도체 생산이 늘어날수록 중국에 이롭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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