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1구역·성남1구역, 공사비 증액 요구 수용
3.3㎡당 770만원 등장···건설사 참여 독려 차원
“원자잿값 인상·둔촌주공 사태 이후 분쟁 최소화 우선”

/ 그래픽=시사저널e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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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재건축·재개발 현장에서 공사비를 둘러싼 인식이 바뀌는 모양새다. 그동안 공사비 인상에 인색했던 것과 달리 최근 시공사의 증액 요구를 수용하거나 선제적으로 대폭 올려주는 사업장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원자잿값 급등으로 건설사들이 기존 공사비에 대해 난색을 표하는 데다 둔촌주공 사례를 피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 재개발 사업지인 대조1구역은 사업 발목을 잡던 공사비 문제가 해결됐다. 시공사 현대건설의 공사비 증액 요구를 조합이 받아들이면서다. 조합은 당초 공사비를 3.3㎡당 462만원으로 책정했다. 반면 현대건설은 자잿값 인상분을 반영한 528만원을 제시했다. 양 측은 지난 4월부터 수차례 협상을 진행한 결과 최근 공사비를 517만원으로 증액하는 데 합의했다.

조합이 시공사의 요구를 받아들인 건 더 이상 착공을 미룰 수 없어서다. 대조1구역은 2019년 5월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이주와 철거를 모두 완료했다. 하지만 공사비에 대한 이견 차로 본계약이 미뤄지면서 착공도 지연됐다. 이번 결정으로 3분기 내 착공에 돌입할 수 있게 됐다. 본격 착공에 들어가면 일반분양 일정도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조1구역은 재개발 완료 후 지하 4층~지상 25층, 28개 동, 2451가구 규모 대단지로 탈바꿈한다. 이 중 일반분양 물량은 483가구다.

낮은 공사비로 시공사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사업장도 공사비 인상에 나섰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시행을 맡아 공공재개발로 진행되는 성남 수진1구역은 두 번째 입찰 공고에서 3.3㎡당 공사비를 510만원으로 제시했다. 기존 495만원에서 15만원 올렸다. 앞서 지난 4월 진행된 1차 입찰에 참여한 건설사가 아무도 없어 유찰되자 공고 조건을 바꾼 것이다. 당시 건설사들은 원자잿값 상승을 반영한 건축비 인상 없이는 참여가 어렵다는 의견을 전달했다.

업계에선 공사비 증액 요구가 받아들여진 만큼 두 번째 입찰엔 건설사들이 적극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조정 이후 지난달 27일 열린 시공사 선정을 위한 현장설명회엔 현대건설∙대우건설·DL이앤씨 등 건설사 5곳이 참여했다. 본입찰 마감일은 이달 25일이다. 수진1구역 재개발은 성남시 수정구 수정동 일대 부지 26만1828㎡에 아파트 5259가구·오피스텔 312가구를 짓는 대형 프로젝트다. 예상 공사비만 1조2000억원에 달해 경기 공공재개발 최대어로 불린다.

공사비 문제로 건설사들의 보이콧 행렬이 이어지자 선제적으로 공사비를 올리는 사업지도 등장했다. 서울 용산구 한남2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달 21일 이사회를 열고 3.3㎡당 공사비 입찰 예정 가격을 770만원으로 잠정 책정했다. 2년 전 한남3구역에서 시공사 입찰 당시 제시한 공사비(3.3㎡당 598만원)보다 172만원 높은 금액이다.서울 종로구 사직제2구역 재개발 조합도 시공사 입찰공고를 내며 3.3㎡당 공사비로 770만원을 책정했다. 성북구 정릉골구역 재개발 조합은 3.3㎡당 740만원을 검토 중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강남 등 인기 지역의 3.3㎡당 공사비가 600만원대로 책정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금액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지난해 11월 강남구 일원동 개포한신 조합이 제시한 공사비가 3.3㎡당 660만원이다. 같은 달 용산구 이촌동 한강맨션의 시공사 선정 입찰공고 금액도 3.3㎡당 610만원이었다. 

공사비 증액에 인색했던 정비사업장의 분위기가 바뀐 건 원자잿값 급등으로 인한 공사비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다. 현재 건설업계는 물론 정부까지 나서 공사비 증액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철근 가격은 지난해 초 1톤당 71만1000원에서 지난 5월 119만원으로 약 66% 상승했다. 레미콘과 시멘트 단가도 각각 13%, 15% 올랐다. 

여기에 최근 정부의 분양가 상한제 개편으로 공사비 증액분을 일반분양분에 반영할 수 있다는 길이 열렸다는 점도 조합들이 공사비 인상에 나선 배경으로 꼽힌다. 앞서 지난달 21일 국토교통부는 자잿값 인상분을 분양가에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분양가 규제 현실화 방안’을 내놨다. 분양가가 최대 4%까지 오르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봤다.

공사 중단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은 둔촌주공 사례도 조합들이 태도를 바꾼 요인으로 꼽힌다. 둔춘주공은 1만2000가구(일반분양 5000가구)가 공급돼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지로 주목받았지만 시공사와 공사비 증액 갈등으로 사업이 무기한 연기됐다. 공사가 중단된 지 두 달이 넘었지만 아직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해 조합원들의 피해만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최근 정비사업장에선 분담금 문제가 있더라도 공사비를 현실화하는 것이 미래를 위해 좋지 않겠냐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분쟁이 발생할 경우 더 큰 손해가 된다는 사실을 둔촌주공에서 확인한 만큼 조합도 시공사도 분쟁 소지를 없애는 쪽으로 논의를 진행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추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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