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금감원장 말 한마디에 시중은행 대출금리 인하
민간주도 성장 모델 아래서 정부의 가격 통제 가능한가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자유’를 35번 외쳤다. 그가 말하는 자유는 보통 경제 영역에서의 자유를 의미했다.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선정한 국정목표 중 하나도 '민간 주도의 혁신성장’ 달성이다.  

하지만 금융 부문에선 시장의 자율성이란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모양새다. 윤 대통령은 최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금리 상승 시기에 금융소비자의 이자 부담이 크게 가중되지 않도록 금융당국과 금융기관이 함께 협력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사실상 금리 인상기에 대출 금리를 올리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그러자 이복현 신임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장들과의 상견례 자리에서 "금리 상승기에 예대금리차(대출금리와 예금금리 간 차이)가 확대되면서 은행의 과도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은행장들과 처음 만난 자리라는 점을 고려하면 강한 어조의 지적이라는 것이 주된 평가였다. 대통령과 금융당국 수장이 은행의 ‘이자장사’에 문제를 삼자 다수의 시중은행들은 대출금리를 내렸다. 

금융권에선 정부와 금융당국의 행태에 대해 ‘관치(官治)’ 금융이라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자장사 비판을 내세워 은행으로 하여금 대출 금리를 인하하도록 사실상 개입했다는 것이다. 자유시장경제의 원칙에서 볼 때 대출 금리를 결정하는 권한은 은행에 있다. 은행의 핵심 상품은 대출이고 이것의 가격은 금리다. 국가가 대출금리를 좌지우지 하는 것은 기업의 상품 가격을 임의대로 조정하는 셈이다. 현 정부가 강조한 시장경제와 가장 반대되는 행태다.

물론 시장이 건전한 질서 속에서 작동하려면 정부의 적절한 규제와 개입이 필요하다. 요즘처럼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은행의 건전성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 하나의 예일 것이다. 금융사들이 위험이 커지는데도 불구하고 단기 이익을 쫒다 대규모 부실 사태가 발생하면 시장 작동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이를 사전에 막는 것이 금융당국의 역할이다. 

하지만 상품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것은 반(反)시장적 행위란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자유시장경제 원칙을 따르자면 윤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공약으로 내걸었던 예대금리차(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 공시 제도에 집중하는 것이 맞다. 대출 금리에 대한 정보를 소비자들에게 더 많이 제공하고, 이로 인해 은행들의 경쟁이 촉진되면서 적정 시장가격이 정해지는 매커니즘이야말로 자유시장 원칙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은행이 정말로 과도한 이자장사를 했는지도 더 따져볼 필요가 있다. 은행이 대출 등 이자자산을 통해 얼마나 이자이익을 얻었는가를 측정하는 지표(NIM·순이자마진)로 볼 때 국내 은행들이 해외 은행들보다 이자이익을 많이 챙겼다고 평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KB국민은행·신한은행·하나은행·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순이자마진(NIM)은 올해 1분기에 평균 1.54%를 기록했다. 미국 은행들(2.32%)보다 크게 낮은 수준이다. 

국내은행의 예대금리차도 아직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지 못한 상황이다. 금감원에 따르면 국내은행의 예대금리 차이는 올해 1분기 1.93%를 기록했다. 제로금리가 이어진 2020년과 비교해 0.14%포인트 높은 수준이지만, 코로나19 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0.02%포인트 낮았다. 

현 정부의 방향이 정부 주도의 경제성장 모델이라면 대출 상품의 가격을 직접 통제하는 것은 어느정도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시장의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직접 가격을 통제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정부는 금융 정책도 명확한 원칙 아래 시행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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