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선거법 제85조 1항 적용···‘부당한 영향력 및 영향을 미치는 행위’ 금지
“공직선거법 예비·음모·미수 처벌 안 해” vs “영향 미칠 '우려' 있는 행위도 처벌”
판례 “공무원, 선거에 영향 미칠 우려 행위도 금지···엄벌하지 않으면 선거결과로 보상받으려 할 것”

'고발사주' 사건 피고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지난해 12월 2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고발사주' 사건 피고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이 지난해 12월 2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고발사주’ 사건으로 재판에 넘겨진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손 검사)의 재판은 공직선거법 요건 충족 여부가 하나의 쟁점이 될 전망이다. 현직 검사가 야당 국회의원 후보에게 범여권 인사들을 고발하라며 고발장 등을 건넨 행위가 공직선거법이 규정한 ‘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등 금지’에 해당하는지가 관건이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공수처는 손 검사에게 공직선거법 제85조(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등 금지) 제1항을 적용했다. 이 조항은 ‘공무원 등 법령에 따라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자는 직무와 관련해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등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먼저 손 검사 측은 수사정보정책관실(수정관실) 소속 직원을 통해 실명 판결문을 입수하거나 (김웅 국민의힘 의원에게) 고발장 등을 전송한 사실 자체가 없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설령 전달했다고 하더라도 공직선거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고발장 등 전달이 사실로 인정될 경우 공직선거법 요건 충족여부를 놓고 양측의 법리다툼이 불가피한 배경이다.

손 검사 측 논리는 공직선거법이 예비나 음모, 미수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수처 검사가 제시한 범죄사실의 전제는 ‘2020년 4월15일자 국회의원 선거(21대 총선)에 부정적인 여론형성 등 영향을 미치게 할 것을 공모’인데 고발장이 수사기관에 접수된 시점은 선거 이후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공수처는 공무원의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도 공직선거법에 저촉된다며 구체적 판례를 통해 손 검사 측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공수처가 제시하는 판례 중 하나는 광주고법 2010노577 사건이다. 이 사건은 군청 공무원이 군수 선거에서 유력 상대 후보자들의 동향을 파악해 선거법위반 사례를 취합하고 제3자를 통해 군 선관위에 익명제보 형식으로 제출한 사례다. 고발사주 사건과 상당한 유사성을 띤 사건으로 보인다.

이 사건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행위를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의 기획에 참여하거나 그 기획의 실시에 관여한 행위’로 봤다.

재판부는 “공직선거법은 공무원 등의 공적 지위에 있는 자들에 대해 선거운동에 이르지 않더라도 선거에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는 행위를 금지하면서 선거운동보다 개념이 넓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 유형을 규정하고 있다”며 “방대한 제보가 선관위 조사 및 고발로 이어질 경우 상대방의 선거운동에 심대한 지장을 초래하리라는 점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실제 선관위 조사가 개시되고 일부 제보내용에 대해 고발이 이뤄짐으로써 상대방 후보 지지도에 악영향을 미친 점 등을 비춰보면 고발을 통해 불이익한 여론을 형성하고 그 반사 이익으로 지지후보자의 당선에 유리하도록 할 계획을 세워 역할 분담을 통해 선관위에 제공한 것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할 공무원이 그 지위를 이용해 장기간에 걸쳐 상대 후보자들의 선거법위반 사례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아 선거운동의 기획과 그 실시함에 참여했다”며 “그 자체만으로도 사회적 비난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지적했다.

공수처가 제시하는 또 다른 판례는 대법원 2019도1197 사건이다. 이 판례는 군청 공무원이 군청 주관의 각종 행사 일정 및 현직군수의 동향을 정기적으로 상대 후보에게 전달해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해 선거에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사례다.

이 판례에서 피고인이 정보를 제공한 상대 후보는 또 다른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으로 구속돼 선거 초반 출마를 포기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공무원의 정보 전달 행위가 실제 선거에 영향을 미친 바가 없었다고 봤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이 공무원의 공직선거법 위반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이러한 범행을 엄벌에 처하지 않는다면 공무원들은 앞다투어 반대편 후보자에게 선거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직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하는 등으로 선거에 개입한 후 선거결과로부터 보상을 받으려 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과 신뢰도 손상, 민주주의 퇴보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공직선거법에 예비·음모·미수 처벌 조항이 없다는 손 검사 측 주장이 틀린 것은 아니다”면서도 “고발장 전달의 사실관계가 밝혀진 전제에서 이 같은 행위가 공무원의 선거관여가 아니라고 볼 판사는 많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손 검사는 공직선거법 위반 외에도 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위반,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위반 등 혐의 또한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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