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무제도에 이어 근무시간 양극화

[시사저널e=이하은 기자] 최근 발표된 ‘주 52시간제’ 개정안을 놓고 IT·게임업계가 뒤숭숭하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IT·게임업계 건물들은 ‘판교 등대’와 ‘오징어잡이 배’ 등으로 불렸다. 잦은 야근으로 늦게까지 불이 켜져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개혁 방향을 두고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냔 불안이 나온다.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 방향의 핵심은 주 52시간제 유연화다. 기존 1주 단위었던 연장근로를 한달 단위로 늘리고,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도 확대할 방침이다. 고용노동부는 “일할 땐 일하고, 쉴땐 쉬라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주 52시간제로 저녁 있는 삶을 경험한 IT·게임업계 종사자들은 즉각 반발했다. 고용부의 발표에 따르면 한주에 92시간까지도 근무할 수도 있어서다. 여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했던 ‘일주일 120시간 근무’ 발언이 회자되면서 과거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커졌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이런 우려가 쏟아졌다. 한 게임사 직원은 “이번주 야근했다고 다음주 쉬게하는 회사가 어디있겠나. 포괄임금제에 묶여 야근수당도 안주는 곳도 많다”고 했다.

그러나 IT·게임업계의 불만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결이 달랐다. 주 52시간제 시행에도 초과근무에 수당도 받지 못하고 있단 경험담과 주 4일제를 시행한 마당에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반응으로 나뉘었다. 실제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실태조사한 결과 대형 게임사의 경우 95.5%는 크런치 모드가 없다고 했지만, 5인 미만의 기업은 49.7%에 그쳤다.  

이에 근무제도에 이어 근무시간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란 예측이 나온다. 같은 판교에서도 원격근무 여부를 놓고 근무제도가 180도 달라지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근무량에서도 격차가 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 네이버와 카카오는 원격근무를 도입한 반면, 대부분 게임사는 전사 출근을 택했다. 여기에 네이버는 월 최대 근무시간에 도달하기 전에 PC·모바일 등 내부 시스템 접속을 차단키로 했다. 장시간 근무를 예방한단 차원에서다. 카카오 주 4일 원격근무를 시행한다. ‘놀금’을 도입한 카카오게임즈는 놀금 주에는 32시간만 근무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최근 개발자들 사이에서 풀재택근무를 채택한 기업을 ‘1티어’로 분류하면서 선호대상으로 꼽히고 있다”며 “중소기업들이 주52시간 때문에 인력난을 겪고 있다고 하는데, 근무제도에 이어 근무시간에서도 격차가 벌어진다면 더욱더 기피할 것”이라고 전했다. 

같은 판교에서도 저녁 있는 삶과 등대의 삶이 나뉠 것으로 예상되면서 IT·게임업계 갈등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주52시간제 유연화의 필요성만 강조하기보다는 최대한 많은 목소리를 듣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