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가 상승 불가피, 내 집 마련 문턱 높아져
기존 주택 시장으로 매수세 돌아설 수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분양가 상한제 개편안 발표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개편안은 분양가를 현실화해 막혀있는 도심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그동안 시장에서 요구했던 정비사업 추진 시 소요되는 필수 비용을 반영하고 건축비에 원자잿값 상승분 반영, 분양가 심사 절차 합리화 등의 내용이 담길 전망이다. 다만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할 것으로 점쳐지면서 예비 청약자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는 분위기다.

분양가 상한제는 ‘택지비+건축비+택지비∙건축비 가산비’를 산정해 주변 시세의 70~80%로 분양가를 제한하는 제도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7월 말부터 민간택지에도 분양가 상한제가 적용되기 시작했다. 신규 아파트 분양가를 눌러 집값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분양가 상한제는 분양가격이 지나치게 오르는 걸 억제하는 순기능도 있지만 공급을 가로막는 규제라는 지적이 많았다. 현장에선 분양가 책정의 기준이 되는 택지비 산정이 감정가 기준인 데다 고급 마감재 등의 비용을 분양가에 제대로 반영해 주지 않는다는 등의 불만이 컸다. 최근에는 우크라이나 사태 등으로 인해 자잿값이 폭등하면서 분양가 산정 방식을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커졌다.

사업성을 우려한 조합들은 적정 분양가를 산정하지 못해 분양 일정을 미뤘고, 서울 지역 내 새 아파트 공급이 크게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올해 초만 해도 서울 상반기 분양계획 물량은 9734가구(24개 단지)였지만 현재 2350가구(17개 단지)로 쪼그라들었다. 연초 계획 물량 대비 75.9% 줄어든 셈이다. 업계에선 이번 분양가 상한제 개편이 서울 주택 공급 가뭄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예비 청약자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분양가 상승이 불가피해서다. 업계에선 서울 정비사업장의 경우 현행 분양가 기준 강남 10%, 강북 15∼20% 가량 인상될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사와 조합 입장에선 분양가를 높여 사업 수익성을 높일 수 있는 길이 열렸지만 분양을 손꼽아 기다렸던 실수요자 입장에선 내 집 마련 기회 문턱이 더 높아진 셈이다.

예를 들어 1만2000가구 분양으로 관심을 모았던 둔촌주공의 경우 분양가 상한제 적용을 받으면 3.3㎡당 예상 분양가는 3500만원 내외다. 하지만 개편 이후엔 3.3㎡당 4000만~4500만원까지 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분양가는 25평형(전용면적 58㎡)의 경우 기존 8억7500만원에서 10억원까지 오를 가능성이 높다.

분양가가 10억원을 넘기면 중도금 대출이 불가능한 만큼 자금이 부족한 실수요자들에겐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 분양가 9억원 이하 주택은 규제 지역 여부에 따라 중도금대출이 40~60%까지 나오지만, 9억원을 초과하면 중도금대출을 전부 현금으로 마련해야 한다. 잔금대출이 된다고 해도 계약금(통상 20%)과 중도금(60%)은 현금으로 있어야 하니 분양가가 10억원일 경우 8억원은 수중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번 분양가 상한제 개편은 그동안 막혀있던 주택 공급의 숨통이 트인다는 점에서 장기적으로 시장 안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다만 당장 청약 계획을 세워놨던 예비 청약자들의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분양가가 현재 주변 시세의 70~80% 수준에서 90%까지 올라가게 되면 기존 주택 시장으로 매수세가 돌아설 여지도 없지 않다. 공급도 좋지만 지금은 실수요자들의 불안감을 잠재울 보완 정책도 함께 내놔야 할 때다.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집값 안정화의 지름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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