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기록물 지정 문건, ‘국회 동의·고등법원장 영장 발부’ 사실상 불가
尹 대통령 “좀 지켜봐 달라”···宋 변호사 “객관적, 적법한 절차로 공개해야”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전날 대통령실과 해양경찰이 발표한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2020년 9월 북한군이 피살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가 지난 17일 서울 서초구 서울지방변호사회 변호사회관에서 전날 대통령실과 해양경찰이 발표한 이른바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문재인 정부시절 서해 공무원 ‘월북 사건’을 윤석열 정부가 ‘피살 사건’으로 뒤집으면서, 대통령기록물로 봉인된 자료의 공개 방법과 범위 등이 향후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서해사건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국민적 관심이 쏠린 다른 사건들과의 형평성 문제, 해양경찰청의 판단 근거 등도 논쟁적 사안이 될 가능성이 크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국가안보실은 지난 16일 2020년 9월 22일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된 후 북한군에 의해 피살된 해양수산부 어업지도선 1등 항해사 이대준씨의 유족이 제기한 ‘정보공개 거부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항소를 취하했다.

대통령실은 “우리 국민이 북한군에게 피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족에게 사망 경위도 제대로 알리지 않은 채 정보를 제한했던 과거의 부당한 조치를 시정하고,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기 바란다”며 항소 취하 배경을 밝혔다.

이에 따라 국가안보실에게 정보를 일부 공개하라고 판단한 1심 판결이 확정될 예정이다.

문제는 대통령기록물로 봉인된 문서를 어떻게 공개하느냐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에 의해 봉인된 문서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2 이상 동의나 관할 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 전직 대통령 또는 지정 대리인의 열람 후 공표 등이 필요하다.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안보관련 정보 왜곡은 국가적 자해행위’(윤건영 의원)라며 협조하지 않을 분위기다. 정보공개 소송 역시 종결될 예정이어서 고등법원장의 영장 발부도 어렵다. 결국 대통령기록물 해제를 위한 윤 대통령의 특별한 조치가 필요한 셈이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지난 17일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직접 관여할 문제는 아니다”라면서도 “(유족) 당사자도 더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법적 조치를 하지 않겠느냐. 거기에 따라 진행되겠죠. 좀 지켜봐 달라”고 답했다.

민감한 군사정보까지 포함된 대통령기록물이 공개될 분위기가 이어지자 시민사회 일각에서는 ‘세월호 7시간 문서’에 대한 공개가 우선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세월호 인권 변호사로 이름을 알린 송기호 변호사는 “서해 공무원 사건은 국가안보를 이유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문건이다”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객관적으로, 그리고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전임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한 문서의 핵심적 내용이 공개되는 것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이다”고 말했다.

송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된 사건의 내용을 공개하려면 ‘세월호 7시간 문서’ 내용부터 공개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송 변호사는 박근혜 정부 시절 황교안 전 대통령권한대행이 대통령기록물로 지정한 해당 문서의 목록을 공개하라며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기도 하다.

그는 “(서해 사건 문건은) 대통령기록물관리법 17조 1항 1호의 국가안보를 이유로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정당한 지정사유가 인정된다”며 “그러나 세월호 7시간 문서 목록은 이 법 조항 각호의 법정 지정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1심 법원 판결에서도 확인된 사안이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2심에서 패소 현재 대법원에 계류돼 있다.

송 변호사는 해양경찰청이 서해 사건의 성격을 뒤집은 판단 배경도 국민에게 공개되어야 한다며 지난 16일 해양경찰청을 상대로 정보공개청구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는 “국민의 생명과 국가안보와 관련된 판단은 객관적이고 적법한 절차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동일한 국가 기관에서 기존 조사 결과와 반대되는 판단을 내리려면 외부 조사 전문가 등이 참여하여 충분한 조사를 거쳐 객관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홍석 변호사(법무법인 이공)는 자신의 SNS를 통해 “문재인 정부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라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다”면서도 “윤석열 정부가 흠집내기 차원에서 말바꾸기를 하도록 한 것이라면 이 또한 진상조사가 필요하고, 말 바꾸기를 해도 별 일이 없다면 또다시 권력에 의해 사실관계가 왜곡되는 악순환이 계속될 것이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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