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부산이전 놓고 노·사 극한 대치
입장 차 좁히기 힘들어···갈등 길어질듯

산업은행 노조가 9일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강석훈 신임 회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정부의 산업은행 부산이전 정책에 반대한 노동조합이 강석훈 신임 산업은행 회장의 출근길을 연일 가로막으면서 노사의 갈등도 극심해지고 있다. 정부, 사측, 노조 모두 쉽게 물러설 수 없는 사안이기에 강 회장이 정식 출근길에 오르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대로 가다간 강 회장이 금융권 최고경영자 가운데 가장 긴 시간 동안 정상 출근을 하지 못한 주인공이 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산은 노조는 이날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강 회장의 출근을 반대하는 투쟁 시위를 이어갔다. 강 회장은 지난 7일 금융위원장의 임명 제청, 대통령 재가를 통해 신임 회장으로 임명됐다. 하지만 다음날인 8일 출근 첫날부터 노조의 반대에 부딪히면서 출근길이 막혔고 이날까지 8일째 본점에 들어서지 못했다. 강 회장은 취임식도 치루지 못한 채 임시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다. 

정상 출근이 막히면서 강 회장이 공식 행사에 참석하기도 부담스러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당장 오는 16일부터 17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투자박람회인 '넥스트라이즈 2022, 서울' 행사에 강 회장의 참석 여부가 불투명하다. 또 쌍용차 매각, 대우조선해양 정상화 등 시급해 해결해야 할 기업 구조조정 당면 과제도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 후보자 시절 공약으로 내건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포함했다. 수도권에 쏠려있는 금융산업을 분산해 부산을 ‘금융허브’로 키우고 지역균형발전을 이루겠다는 뜻이다. 산업은행 노조는 ‘결사항전에 돌입할 것’ 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이에 강 회장이 내정됐을 당시부터 노사는 극심한 갈등에 빠질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금융권에선 노사 간의 갈등은 장기화될 것이란 예상이 주를 이룬다. 정부와 여당 입장에서 산은 지방이전을 주요 정책으로 포함시킨 후 지방선거에서 승리한 만큼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다. 강 회장도 취임 초에 대통령의 핵심 공약을 뒤집는 것은 쉽게 생각할 수 없다. 

노조도 ‘끝장 투쟁’을 고수한다는 방침이다. 노조는 지난 13일 서울 산은 본점 앞에서 '산은 지방이전 대정부 투쟁 선포식'을 가졌다. 조윤승 산은 노조 위원장은 "강 회장에게 요구하는 것은 먼저 산업은행 본점의 부산 이전을 막는 것이다"라며 "부산 이전을 하지 않겠다는 합의가 없다면 절대 투쟁을 풀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산업은행 핵심 인력들이 지방 이전을 우려해 대거 이탈하고 있는 점은 갈등이 더 길어지게 하는 요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노조가 제기한 산업은행 이전 반대의 근거 중 하나는 전문성을 갖춘 인력들이 대거 조직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화되는 분위기다. 산업은행은 최근 석사·박사 학위 소지자, 변호사 등 전문인력을 채용한다는 공고를 냈다. 산은이 정기 공채시즌이 아님에도 전문 인력을 모집하는 일은 이례적이란 반응이다. 산업은행 이전 이슈로 조직이 흔들리고 있는 만큼 노조의 투쟁에 대한 정당성이 부여되고 있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일각에선 강 회장이 금융권 최장 출근저지 기록을 작성할지 모른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가장 긴 기간 동안 정상 출근을 하지 못했던 금융사 수장은 윤종원 IBK기업은행장이다. 윤 행장도 당시 노조가 '낙하산 인사'로 규정, 출근 반대에 나섰고 27일만에서야 출근을 할 수 있었다. 

산은 관계자는 “단기적으론 산은을 이전한다 안한다 식의 이분법으로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사안이기에 계속 노조와 대화를 하며 풀어나가야 한다”라며 “주말에 강 회장이 노조의 농성장에 찾아가 대화를 하는 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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