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 역할해야 하는 준법위 책임자, 사면 발언 신중해야

[시사저널e=이호길 기자] 이찬희 삼성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 위원장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면론을 공론화했다. 삼성의 준법 경영을 위해 회사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 조직의 수장이 이 부회장 사면을 언급했다. 견제 역할을 맡은 인물의 팔이 안으로 굽어버린 것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 3일 삼성 서초사옥에서 기자들과 만나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 최고경영진이 재판 때문에 제대로 경영을 할 수 없다면 결국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것”이라며 “그래서 국민의 뜻에 따라 결단을 내려주셨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서 그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도 이 부회장 사면 필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은 보도자료를 통해 “법조인 출신의 준법감시위원장이 진행 중인 다른 재판을 핑계로 이미 판결이 끝난 중대 경제 범죄에 대해 사면을 언급한다는 것은 몰지각하고 몰염치한 발언”이라며 “삼성이 준법감시위 설치와 운영 목적에 있어 최소한의 진정성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이 위원장을 즉각 해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부회장 사면론은 재계를 중심으로 제기됐다. 경제5단체(대한상공회의소·한국무역협회·중소기업중앙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지난 4월 경제 위기 극복과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선 역량 있는 기업인의 헌신이 필요하다며 이 부회장의 사면복권을 청원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최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난 자리에서 이 부회장 사면을 공개적으로 요청했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가석방됐지만, 취업제한 논란 등으로 경영 보폭을 넓히기에는 한계가 있다.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볼 때,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국민 여론이 우호적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삼성준법위원장이 이같은 사면론에 힘을 싣는 건 부적절하다. 준법위는 삼성 계열사들의 내부 통제 기능을 강화해 사회적 신뢰를 제고하기 위해 설치된 조직이다. 준법위 역할이 삼성의 법률 준수 여부를 감시하는 데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준법위원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징역 2년 6개월의 확정 판결을 받은 이 부회장의 사면을 거론하는 건 온당치 않다.

준법위가 출범한 이유도 국정농단 재판을 계기로 내부 감시제도를 갖출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이 부회장의 사면을 촉구할 게 아니라 준법위 차원에서 불법행위를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배는 양쪽 노로 저어야만 앞으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다. 한쪽 노가 사라지면 한방향으로만 겉돌게 된다. 사면 요청보다는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해 개선방안을 강구하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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