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당사자 간 대립···대선정국 관료들 눈치보기도 한 몫
일몰시점 다가오며 노동자 불안감 증폭···정부, 불법행위 엄단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화물노동자들이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하면서 이들이 요구하는 안전운임제 일몰제가 폐지될지 관심을 모은다. 안전운임제는 입법 사안으로 현재 국회에도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으나 이해당사자간 첨예한 입장 대립과 대선 정국 기간 관료들의 눈치보기가 겹쳐 진행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7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이날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화물연대는 이날 전국 16개 지역본부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진행한 뒤 주요 항만과 산업기지, 사업장 등에서 파업을 이어갔다. 

화물연대측은 이번 파업에 조합원 2만5000여명이 참여했으며 비조합원들도 자발적으로 동참하면서 주요 항만과 산업단지, 사업장의 운행율이 크게 줄었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경기 평택항, 충남 대산 석유화학단지, 울산 석유화학단지, 전남 여수산업단지, 컨테이너 부두, 포항 포스코, 주요 시멘트 출하기지 운송이 멈췄단 설명이다.

다만, 국토교통부는 이날 오전까지 전국 12개 항만 모두 정상운영하고 있으며 항만별 컨테이너 장치율(항만의 컨테이너 보관능력 대비 실제 보관된 컨테이너 비율)도 평시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번 총파업의 주요 쟁점은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이다. 안전운임제는 화물차주와 운수 사업자가 지급받는 최소한의 운임을 공표하는 제도이다. 화물차주에게 적정 수준 임금을 보장해 과로, 과속, 과적 운행을 방지하고 교통안전을 확보하자는 목적으로 지난 2020년 1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도입 당시 시장 혼란에 대한 우려로 수출입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 한해 3년만 시행하기로 했는데 일몰 시점이 다가오면서 화물운송 종사자들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이봉주 화물연대 위원장은 “7월부터 내년도 안전운임 고시를 위한 논의에 들어가야 하는데 안전운임 일몰로 인해 위원회조차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며 “유가폭등으로 200만~300만원의 유류비가 추가지출 돼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현실에서조차 참고 참아오면서 정부의 입장표명을 요구해 왔지만 정부는 지금까지도 입장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고 언급, 화물연대를 무기한 총파업으로 내몬 모든 책임은 정부에게 있다고 지적했다. 

화물연대 관계자는 “정부와 접촉은 지난 2일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당시 정부는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 관련해 가타부타 아무 얘기를 하지 않았다”며 “정부가 명확한 입장을 밝힐 때까지 파업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정부가 친경영계 입장을 여러차례 밝힌 바 있는데 이번 파업에 대해 파업이라 인정하지 않고 운송거부란 단어를 계속 사용하고 있어 주목하고 있다”며 “특수고용노동자인 화물 노동자의 노동자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의도가 읽힌다”고 덧붙였다.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안전운임제 일몰 폐지를 위해선 법안 개정이 필요하다. 현재 국회에는 안전운임제의 유효기간을 없애고 항시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지난해 1월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안을 대표 발의했고 같은해 3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 안건 상정이 된 이후 국제 심포지엄과 대선공약 반영 논의 등 공론화하고 있으나 입법까진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입법이 속도를 내지 못하는 이유로는 이해당사자간 첨예한 대립과 주무부처인 국토부의 눈치보기가 꼽힌다. 조 의원실 관계자는 “안전운임제 시행 당시 3년 일몰제로 하다보니 화주와 운송업체 등 사측은 안전운임제를 무력화시키려는 편법이나 불법을 많이 저질렀다”며 “다른 불법 수수료를 청구하거나 업체간 담합을 하거나 안전운임제에 포함하지 않는 새로운 비용을 추가 신설하는 등 3년 지나면 없어질 제도라 생각하고 버티기를 해왔다”고 말했다.

화물운송업계 관계자는 “다음년도 안전운임은 안전운임위원회에서 10월31일까지 결정해야 하는데 그동안 이 법정기한을 지킨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화주측 대표들이 계속 불참하거나 회의를 하다 뛰쳐나가버리는 등 소극적, 비협조적으로 해왔다”고 덧붙였다.

올해 초 안전운임제 관련 연구 용역 최종 보고서가 나왔으나 국토부는 이 보고서를 즉시 공개하지 않고 차일피일 미뤘다. 이를 두고 국토부가 대선이 끝난 이후 정권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눈치보기를 한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조 의원실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대기업 편에 서려는 방향이 더 크고 민주당은 노동자 친화적인 정책 방향을 갖고 있다보니 이 보고서를 어떻게 평가하고 안전운임제를 어떻게 할지 결정하는 기간을 대선 이후로 미뤄놓은 것”이라며 “올해 초에는 공개하지 않다가 지금에서야 공개하는 것은 국토부가 윤석열 정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달 이후 안전운임제 관련 공청회 등을 통해 입법 동력을 살리겠단 설명이다.

이번 파업을 계기로 안전운임제 보완입법 관련 여야 논의가 활기를 띌지 주목된다. 이날 민주당은 화물차 기사 생존권 보장, 국민의힘은 파업으로 인한 피해 방지에 방점을 두는 언급을 내놓았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국회 브리핑에서 “정부는 노동자들의 절규에 법과 원칙을 강조하기 이전에 노사정 교섭을 위한 대화의 손을 먼저 내밀어야 한다”며 “민주당은 안전운임제 일몰조항 폐지와 적용 품목 확대를 위해 화물운수법 개정에 적극 나서겠다”고 말했다. 

성일종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원내대책회의에서 “화물연대 파업은 최근 물류 수송난을 악화시키고 물가에도 악영향을 주는 등 국민 생활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정부와 화주연합회, 화물연대는 이미 대화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양보와 타협을 통해 국가 경제와 민생을 위한 합리적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한편, 정부는 이번 화물연대 총파업과 관련해 단순 집회가 아닌 정상 운행차량의 운송방해 행위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겠단 방침이다. 국토부 측은 “화물연대 요구사항인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 등과 관련해 정부는 언제나 화물연대와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며 “일선 화물차 운전종사자들은 명분없는 집단행동에 동조하지 말고 생업에 지속적으로 종사해달라”고 당부했다. 

국토부는 지역별 비상수송위원회를 통해 부산항과 인천항 등 주요 물류거점에 군위탁 차량 등 관용 컨테이너 수송차량을 투입하고 운송방해행위나 물리적 충돌 등 불법행위 차단을 위해 주요 물류거점에 경찰력을 배치한단 계획이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