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제도 아래선 금리 오르면 건전성 오히려 개선돼
보험사들이 제도 변경에 집중하도록 도울 필요

[시사저널e=유길연 기자] “금리가 오르고 있어 보험사 사정도 한결 나아졌습니다.”  

지난해 말부터 보험사 관계자들을 만나면 쉽게 들을 수 있던 이야기다. 보험사는 고객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가지고 주로 채권에 투자에 이익을 낸다. 금리가 오르면 채권으로부터 얻는 이자이익도 커져 운용수익률도 오른다. 보험사 입장에서 금리 상승이 호재인 이유다. 

하지만 최근 금리가 너무 빠르게 오르자 보험사들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자본건전성 지표(RBC)가 크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의 권고치인 150%를 밑도는 보험사들이 속출했다. DGB생명은 법정 기준치인 100%를 밑도는 84.5%를 기록했다. 대형 보험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NH농협생명은 RBC 비율을 평소 일정 대비 뒤늦게 공시하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가파른 금리 상승으로 채권 평가손실이 불어나면서 자본이 대폭 깎인 결과다. 채권의 가치는 금리와 반비례 관계를 가진다. 보험사들은 금리하락기 동안 평가이익이 커지는 방향으로 채권을 회계적으로 분류한 것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셈이다. 

새 회계기준(IFRS17)과 신 지급여력제도(K-ICS·킥스) 대비에 집중하려 했던 보험사들은 날벼락을 맞았다. 올해 보험사들은 내년에 도입될 새 제도에 대한 대응을 우선순위로 두고 RBC 하락은 일정정도 감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RBC가 너무 하락하자 이에 대한 조치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보험사들은 RBC 개선을 위해 부랴부랴 신종자본증권, 후순위채 등 자본성증권을 추가 발행할 준비를 하고 있다. 생명보험사 ‘빅3’로 꼽히는 한화생명은 최대 5000억원의 후순위채를 발행할 계획을 세웠다. 한화생명은 올해 초에도 후순위채를 통해 약 9000억원의 자본을 늘린 바 있다. KB손해보험, DGB생명 등도 추가 자본확충에 나섰다.    

보험사들은 최근 몇 년 간 자본성증권을 대거 발행한 결과 이자부담이 크게 늘어난 상황이다. 보험사들은 새 제도에 대응하기 위해 작년에만 약 4조원 규모의 자본확충을 진행했다. 자본성증권의 금리 수준은 보통 보험사들의 운용자산이익률보다 높기에 발행 규모가 커질수록 비용 부담도 증가한다. 

이에 업계에선 금융당국이 RBC에 대한 보험사들의 부담을 줄여줄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IFRS17과 킥스 아래선 시장금리가 오르면 부채 규모가 줄어 자본건전성도 개선된다. 물론 최근 금리 상승 폭이 워낙 커 새 기준 상으로도 자본건전성 지표가 악화될 수 있는 소지가 있지만 이는 부분적으로 제도를 변경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금융당국도 최근 문제를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새 기준에 대한 대비에 노력하고 있는 만큼 RBC란 짐을 크게 덜어낼 수 있는 쪽으로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물론 RBC도 현재 보험사들이 지켜야할 약속이기에 당국 입장에서는 RBC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새 회계기준이 보험사의 경제적 실질을 더 잘 반영하기 때문에 이에 더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 업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업계는 현재 논의되고 있는 여러 방안 가운데 부채적정성평가(LAT) 잉여금을 가용자본으로 인정해주는 방안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LAT 잉여금이 많을수록 새 기준 도입에 대한 보험사들의 여유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보험사들의 LAT는 크게 늘었다. IFRS17 도입을 준비하기 위해 상품 포트폴리오를 대폭 조정하는 등 뼈를 깎는 노력이 금리 상승을 만나 나타난 결과다. 대형사 가운데 제도 변경에 대해 상대적으로 대응력이 떨어진다고 평가받던 한화생명도 지난해 LAT 잉여액이 약 8조원으로 업계 상위권으로 올라섰다. 금융당국은 LAT 잉여액 중 자본으로 인정해주는 범위를 최대한 늘리는 쪽으로 결정하기를 기대한다. 

금융당국은 금융사들이 금리 급등 등 경제적 변동성에 잘 대응하고 있는지를 감독하는 것 못지 않게 이에 대한 충격이 최소화되도록 돕는 역할도 중요하다. 당국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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