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화 기대감에 서울·1기 신도시 집값 널뛰기
섣부른 규제 변화, 지난 정부 과오 되풀이 할 수도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윤석열 정부가 공식 출범하면서 향후 진행될 부동산 정책에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리는 분위기다. 새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규제 완화와 공급 확대 등 시장 정상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지난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정부 국정과제에는 규제 완화를 기조로 하는 주택 정책이 여럿 나열됐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세 부담 완화, 주택담보인정비율(LTV) 등 대출 규제 완화, 분양가상한제·재건축 부담금·안전진단 등 재개발·건축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특히 규제 완화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공급이 충분하다며 규제 일변도로 일관해 왔다. 하지만 지난 5년간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고 서민 주거 환경은 불안정해진 상황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선 정부와 정반대인 ‘규제 완화’ 카드를 통해 시장 정상화에 나서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윤 대통령의 공언대로 규제를 확 풀기엔 시장 상황이 녹록지 않다. 대선 이후 규제 완화 기대감에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집값이 요동치고 있어서다. 현재 강남권은 물론 양천구∙광진구 등 재건축 단지들에서도 신고가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노후 아파트가 많은 1기 신도시 역시 재건축 규제완화 소식에 집값이 날아올랐다. 부동산R114 집계에 따르면 대선 직후인 3월 10일부터 지난 6일까지 약 두 달간 1기 신도시 아파트 매매가격 누적 상승률은 0.39%다. 올해 1월 1일부터 대선이 치러진 3월 9일까지 상승률이 0.07%인 점을 감안하면 오름폭이 5배 이상 확대된 것이다. 새 정부는 ‘1기 신도시 재정비특별법’을 만들어 용적률을 상향하고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는 등 리모델링·재건축·재개발 사업을 활성화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전 정부만큼 시장이 불안해진 상황에서 규제 완화는 불난 집에 기름을 부는 격이 될 수 있다. 점진적인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 다행히도 정부는 ‘속도 조절’을 시사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 2일 인사청문회에서 “잘못된 시그널로 악용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매우 신중할 뿐만 아니라 저희들이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방향으로 매우 정교하고 신중하게 움직이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 개정을 연내에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안전진단 기준 완화는 윤 대통령의 대표 공약이다. 안전진단은 재건축의 첫 관문으로 시행 여부를 판단하는 단계다. 지난 정부 들어 평가 기준이 강화되면서 통과 문턱이 높아졌다. 윤 당선인은 기준을 완화해 서울 주택 공급 통로인 재건축을 활성화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안전진단을 앞둔 단지들의 집값이 들썩이면서 개정 시기를 내년 상반기로 미뤘다.

이 같은 정부의 신중 모드를 두고 시장에선 ‘공약 후퇴’라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 공약 실천도 중요하지만 때가 있다. 섣부른 규제 변화가 시장 실패로 이어지는 건 이미 지난 정부에서 확인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지금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정책을 완성해야 할 때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