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강제노동 금지 등 3건 발효···“ILO, 국내법보다 노동권 폭넓게 인정”
경영계 “자의적 해석 막을 지침 마련해야”···노동계 “플랫폼 노동자 보호 강화”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국제 노동 규범인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이 발효되면서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단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사전에 관련법을 정비했지만 단체 교섭과 쟁의 행위 부분에 있어선 ILO 협약과 국내법이 충돌할 수 있단 분석이다. ILO 기본협약 해석을 놓고 노사 갈등이 심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ILO 기본협약 29조와 87조, 98조 등 3건이 이날부터 발효됐다. ILO 기본협약은 ILO가 채택한 협약 중 가장 기본적인 노동권과 관련된 협약 8건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이중 4건을 비준하지 않다가 지난해 2월 국회에서 3개 비준안을 의결했다. 

이번에 발효된 협약 중 29조는 모든 형태의 강제 노동 금지, 87조는 노사의 자발적인 단체 설립과 가입 및 자유로운 활동, 98조는 근로자 단결권 행사에 관한 보호와 자율적인 단체교섭장려 등의 내용을 각각 담고 있다. 

정부는 협약 비준에 앞서 관련법을 정비했다. 원래 우리나라 노조법은 근로자가 아닌 자는 노조에 가입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ILO 기본협약과 상충하지 않도록 해고자와 실업자도 노조 가입을 허용하도록 개정한 노동조합법과 교원노조법, 공무원 노조법이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되고 있다. 근로시간 면제 한도를 초과한 단체협약은 무효로 하는 내용도 담겼다.

이에 따라 이날 ILO 기본 협약이 발효된다고 해서 당장 제도상 크게 달라지는 부분은 없다. 하지만 국내법과 ILO 기본 협약 간 충돌 부분이 있단 지적이 나온다. ILO 협약은 비준시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기에 정리가 필요하단 지적이 나온다.

/ 표=정승아 디자이너
/ 표=정승아 디자이너

일단 노조법 개정으로 단결권 문제는 ILO 협약과 어느정도 부합하게 됐고, 법외 노조 통보 제도도 판례로 정리돼 없어졌으나, 단체 교섭과 쟁의 행위 부분을 놓고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단 분석이다. 

유형웅 사법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아직까진 단체 교섭 사항을 근로조건 유지 개선 관련 사항으로 한정짓고 있다”며 “ILO는 이것도 핵심적이지만 노사관계 변화를 반영해 대상을 다양하게 확대할 수 있고 정부 당국에서 일방적으로 교섭 사항을 제한할 수는 없단 입장이라 이 부분은 현재 우리 대법원 판례 입장과 맞지 않을 수 있단 얘기가 있다”고 말했다.

쟁의 행위에 대해선 “지금 대법원 판례는 근로조건 유지 개선과 상관없는 목적의 쟁의 행위는 불법으로 보고 있다”며 “ILO는 순수한 정치파업이나 사적인 권리 실현을 위한 파업은 안 된다고 보지만, 정치적 이슈 같아도 경제 사회적 쟁점으로 근로 조건에 간접적 영향을 미치는 파업은 허용한단 입장이다. 다른 업계 노조와 연대 파업도 허용된단 입장”이라고 말했다.

단체 교섭과 쟁의 행위의 대응 목적에 있어 ILO가 우리 대법원 입장보다 넓게 보고 있어 마찰이 예상된단 분석이다. 

실제 경영계와 노동계는 이번에 발효되는 ILO 협약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 경영계는 ILO 기본협약이 노조 권한이 지나치게 강화돼 노사관계 불균형이 심화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확대 해석을 막기 위해 국내법 적용 원칙을 확립하고 자의적 해석을 막기위한 지침을 마련해야 한단 지적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ILO 기본협약이 비준되면서 안 그래도 노조 쪽으로 기울어진 노사 관련 제도가 더욱더 노조 편향적으로 바뀌게 됐다”며 “국제 기준에 맞게 사용자 측에서도 일정한 방어권을 행사할 수 있는 균형 잡힌 법 제도 도입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는 ILO 기본협약은 최소한의 기준으로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선 우리 경제 규모를 봤을 때 노동관련 제도도 선진국 채택 원리에 기초해 개정해야 한단 입장이다. 특수고용 플랫폼 노동자의 노동자성을 명확하게 인정하고 이들의 권리를 보장해야 한단 지적이다. 

민주노총 관계자는 “지난번 택배노조 파업의 경우 노동위원회는 CJ가 실질적 사용자기에 교섭에 나와야 한다고 했지만 CJ는 대리점주랑 교섭하라며 나오질 않았다”며 “택배 노동자들이 노조만 만들고 교섭은 실질적 권한이 아무것도 없는 대리점주랑 하라고 하면 노동자의 실질적 권리를 보장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교사나 공무원의 경우 일반 노동자 수준의 파업을 할 순 없지만, 제한적 수준이라도 단체행동권을 보장돼야 한단 지적이다. 

이 관계자는 “복수노조 교섭 창구 단일화 제도가 악용되는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70~80% 사업장에서 사용자들이 자신들이 개입해 어용노조를 만들어 힘을 실어주는 식으로 악용하고 있다”며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해 창구 단일화 제도를 강제하지 말고 자율적 교섭을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