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단지, 경쟁률 한 자릿수
1순위 마감도 미계약 속출
“분양가·입지별 양극화 심화될 것”

/ 그래픽=시사저널e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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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분양시장에서 지난해 유행했던 ‘선당후곰’(일단 지원해 당첨된 후에 고민한다는 신조어)식의 청약 경향이 줄어드는 분위기다. 청약 경쟁률이 올해 초 두 자릿수를 기록한 이후 이달 한 자릿수로 내려앉으면서다. 일부 단지에선 당첨자들이 계약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대출 규제와 금리 인상, 집값 하락 우려 등으로 실수요자들의 ‘옥석 가리기’가 뚜렷해진 모양새다.

6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서울 강북구 미아동 ‘한화포레나미아’(삼양사거리특별계획3구역을 재개발)는 전날 1순위 청약을 진행한 결과 경쟁률 7.3 대 1을 기록했다. 328가구 모집에 2374명이 신청했다. 앞서 단지에서 800m 떨어진 거리에 있는 미아동 ‘북서울자이폴라리스’(미아3구역 재개발)는 지난 1월 진행된 1순위 청약에서 경쟁률이 32.4 대 1로 집계됐다. 같은 지역에서 청약 1순위 경쟁률이 두 자릿수에서 한 자릿수로 내려앉은 셈이다. 지난해 서울 아파트 청약 경쟁률이 평균 164 대 1로 세 자릿수였던 것과 비교하면 올해 들어 청약 열기가 빠르게 식어가는 모양새다.

대통령 선거 이후 처음으로 공급되는 서울 내 브랜드 단지임에도 청약 성적이 저조한 건 높은 분양가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강북구의 경우 분양가상한제를 적용 받지않는다. 한화포레나이아 분양가는 전용면적 84㎡ 기준 10억8921만∼11억5003만원에 책정됐다. 앞서 고분양가 논란이 있었던 북서울자이폴라리스(9억9600만~10억3100만원)보다 1억원 가량 비싸다. 분양가와 주변 시세가 비슷해 당첨 후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북서울자이폴라리스에선 계약 포기가 속출했다. 미계약 18가구(전용 42㎡B 2가구∙전용 84㎡ 6가구·전용 112㎡ 10가구)가 발생했다. 높은 경쟁률을 뚫은 당첨자 중 재당첨 제한을 감수하고 계약을 포기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의미다. 서울은 투기과열지구에 속해 청약 당첨 후 계약을 포기하면 10년 동안 재당첨이 제한된다. 최초 당첨자뿐 아니라 예비당첨자들도 계약을 포기했다. 서울에선 예비당첨자를 공급 가구수의 5배까지 정한다. 이를 적용하면 북서울자이폴라리스의 경우 전용 84㎡ 기준(공급 가구수 87가구) 예비당첨자가 435명이나 된다. 이 단계에서도 물량을 털어내지 못한 것이다. 이곳 역시 분양가가 중도금 대출이 되지 않는 9억원(84㎡ 기준)이 넘어 입지나 주변 시세에 비해 비싸다는 평가가 있었다.

전체 물량 중 90%가 무순위 청약으로 나온 단지도 등장했다. 지난달 분양에 나선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강북종합시장 재정비사업)는 216가구 중 미계약으로 남은 198가구에 대해 오는 11일 무순위 청약을 진행한다. 198가구는 무순위 청약 제도가 시행된 2019년 2월 이후 최대 물량이다. 2019년 5월 분양한 홍제역 해링턴플레이스의 174가구를 뛰어넘었다. 이곳은 전용 59㎡ 일부 주택형 분양가가 9억원을 초과하는 등 고분양가 논란이 있었다. 분양 당시 상당수 주택형이 1순위 마감에 실패했다. 이 밖에 동대문구 장안동 ‘브이티 스타일’과 종로구 숭인동 ‘에비뉴 청계’, 관악구 신림동 ‘신림 스카이 아파트’ 등이 미계약으로 수차례 무순위 청약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선 고점이란 인식이 확대되고 대출 규제 강화, 금리인상 부담까지 더해지면서 실수요자들의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유정상 리얼투데이 과장은 “통상 주변 시세보다 20% 가량 저렴한 분양가에 나와야 흥행 가능성이 높은데 최근 분양 단지들은 고분양가로 시세차익을 기대하기 어려웠다”며 “수요자들의 눈높이가 높아진 만큼 앞으로도 ‘묻지마 청약’보다는 입지 여건과 분양가, 중도금 대출 여부 등을 살피고 청약에 나서는 경향이 강해질 전망이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강남이나 용산 등 주요 입지에선 여전히 대기 수요가 많은 만큼 상품·입지별 양극화가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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