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관련 공공공사 속속 발주
산업부, 탈원전 기조 변화 감지
SMR·원전 해체 신사업 탄력 기대

/ 그래픽=시사저널e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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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건설업계에 원자력 발전 사업에 대한 기대감이 고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에 묶여있던 원전 관련 공공공사 물량이 풀리는 등 벌써부터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어서다. 원전 활성화를 내세운 윤석열 출범 이후에는 원전 관련 신사업도 탄력을 받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원전 관련 공공공사 발주, 탈원전 기조 변화 감지  

5일 건설업계에 따르면 대우건설 컨소시엄(대우건설∙현대건설∙GS건설)은 한국원자력연구원이 발주한 ‘수출용 신형연구로(기장로) 건설공사’ 수주를 앞두고 있다. 기장로는 부산 기장군 장안읍 좌동리 일원에 판형 핵연료 등 최신 기술이 세계 최초로 적용되는 원자력 연구개발 시설을 짓는 사업이다. 수입에 의존했던 방사성 동위원소(핵의학 진단∙암 치료 필수 물질)의 자급능력 확보를 목적으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범정부가 추진해온 국책 사업이기도 하다. 공사비는 4779억원이다.

업계에선 이번 사업을 시작으로 원전 관련 공공공사가 확대되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일고 있다. 원전 관련 공공공사는 그동안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 기조 아래 신규 발주가 위축되고 일부 수주는 연기되기도 했다. 기장로 건설 역시 오랫동안 발주가 묶여있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기장로의 경우 설계를 끝낸 지 꽤 된 사업이지만 현 정부 들어서 발주가 계속 밀렸다”며 “새 정부를 앞두고 정부부처의 기조가 변화하는 모양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에너지 정책 담당 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서도 달라진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문승욱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달 한국수력원자력 한울원전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원전은 안정적인 전력 수급을 위한 주 공급원이다”며 “건설 중인 원전은 높아진 안전기준을 충족하면서 속도감 있게 완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문 장관이 그동안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수행하며 원전 확대에 꾸준히 부정적 목소리를 내온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업계에선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공약인 ‘탈원전 백지화’ 기조에 맞춰 정책 수정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주요 탈원전 정책 백지화를 주요 에너지 공약으로 내세웠다. ▲원전 발전 비중 30~35% 상향 ▲건설 중단 원전 정상화 ▲기존 원전 수명 연장∙가동 등이 대표적이다. 원전 산업 생태계를 활성화시키고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기술력 복원을 통해 원전 최강국을 건설하겠다는 구상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윤 당선인의 기조에 맞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업무 보고에서 원전정책의 재정립을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인수위원들은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를 위한 절차적 방안과 원전 생태계 복원을 위한 과제를 조속히 검토할 것을 요구했다.

◇윤석열 정부 원전 활성화···SMR·원전 해체 사업 탄력 기대감

새 정부의 기조에 맞춰 건설사들의 원전 신사업도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최근 건설업계에선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업이 새 먹거리로 부상 중이다. SMR은 대형 원전 대비 100분의 1 크기인 소형 원전이다. 주로 해안가에 지어지는 기존 원전과 달리 어디에나 건설할 수 있으며 태양광·풍력·수력 발전보다 효율이 높아 차세대 원전 모델로 꼽힌다. 방사능 유출이 대형 원전의 1만분의 1 수준으로 안정성도 높은 편이다. 탄소배출이 거의 없어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이미 SMR을 탄소중립을 위한 대안으로 삼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윤 당선인 역시 SMR 개발과 상용화를 위해 제도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삼성물산은 미국의 SMR 전문기업 뉴스케일파워에 작년과 올해 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이 회사의 SMR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의 설계 인증을 최초로 획득해 상용화에 가장 근접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삼성물산은 뉴스케일파워가 진행 중인 미국 아이다호주 SMR 건설 프로젝트에서 반응로 설치와 제반 시설 건설 등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다. SMR 투자 확대로 향후 국내외에서 사업기회를 선점하겠다는 계획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초소형모듈원전(MMR) 분야에 뛰어들었다. 미국의 전문기업인 USNC와 지분 투자 계약을 체결하고, MMR 글로벌 EPC 사업 독점권을 확보했다. MMR은 SMR의 종류 중 하나로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한 원전으로 평가받는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캐나다 토론토 초크리버원자력연구소 용지에 실증플랜트 건설에 착수하고 2025년 상업운전을 시작할 계획이다. 초크리버 MMR 실증플랜트에서 얻은 기술을 기반으로 고온가스로를 국내에 도입하고, 대용량 전기분해 수소 생산 플랜트를 건설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국내에서도 MMR 기술 활용을 준비하고 있다. 경북도, 한국원자력연구원, 포항공대 등과 MMR를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기술 개발 협력을 진행 중이다.

노후 원전을 해체하는 작업도 주목 받고 있는 신사업이다. 가장 적극적인 건설사는 현대건설이다. 현대건설은 지난달 28일 미국 원전 해체 업체인 홀텍사와 인디안포인트 원전 해체 작업에 PM(Project Management) 계약을 포함한 원전 해체 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양사는 협력을 통해 ▲홀텍 소유 미국 원전 해체 사업 직접 참여 ▲글로벌 원자력 해체 시장 공동 진출 ▲마케팅과 입찰 공동 추진 등에 합의했다.

현대건설은 원전 해체 초기 단계부터 사업에 참여해 선진 원전 해체 기술을 쌓는다는 계획이다. 향후 발주가 예상되는 국내 원전 해체 사업에 있어서도 우위를 점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국내 수명연한이 도달한 원전은 17개로 파악된다. 해체 후 해당 부지에 SMR을 설치하는 게 현대건설의 구상이다. 현대건설은 이번 원전해체 사업을 계약을 체결한 홀텍과 지난해 SMR 개발 및 사업 동산 진출 협력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에너지 담당 부처인 산업부의 기조가 바뀌고 있어 단기적으로 원전 사업 수주 시장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장기적으로는 새 정부가 완전 사업을 위해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 만큼 SMR 등 원전 관련 사업이 탄력을 전망이다”고 말했다. 이어 “건설사들이 해외에서 쌓아온 기술을 국내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반도 마련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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