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수주전서 한 자릿수 투표율 굴욕
홍보 효과 기대했지만 낮은 인지도만 재확인
“매번 비슷한 결과···특별한 수주 전략 안 보여”
‘필름 전문’ 김정일 사장 취임···전문성 부재 우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코오롱글로벌이 노원 월계동신에 이어 동작 노량진3구역 수주에 실패했다. 올해 1월 취임한 김정일 사장(사진)을 필두로 서울 정비사업 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지만 쉽지 않은 모양새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서울 정비사업 시장에서 코오롱글로벌의 입지가 더욱 좁아진 모양새다. 노원 월계동신에 이어 동작 노량진3구역에서도 수주에 실패하면서다. 이번에도 한 자릿수 투표율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한계를 재확인했다. 서울 진출을 위해 출사표를 던졌지만 수주 전략이 여전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4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코오롱글로벌은 전날 열린 노량진3구역 시공사 선정 총회에서 참석 조합원 328명 중 13표를 얻는 데 그치며 288표를 받은 포스코건설에 시공권을 내줬다. 경쟁사 대비 낮은 공사비와 최고급 마감재, 골든타임 분양제 등 창사 이래 최고 수준 조건을 제시했지만 조합원들의 마음을 얻는 데 실패했다. 노량진3구역 재개발은 지상 30층, 16개 동, 1012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공사비는 3000억원으로 책정됐다.

코오롱글로벌은 노원구 월계동신 재건축 수주전에서도 경쟁사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투표수를 받아 굴욕을 겪었다. 지난 2월 27일 열린 시공사 선정 총회에선 참석 조합원 800명 가운데 739표(92.5%)를 얻은 HDC현대산업개발이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코오롱글로벌의 득표수는 49표(6%)에 불과했다. 광주 아파트 붕괴사고 이후 여론이 좋지 않던 HDC현산과 붙어볼 만하다는 관측도 나왔지만 끝내 대형 건설사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월계동신 재건축은 공사비 2826억원 규모로 지상 25층, 14개 동, 1070가구를 짓는 사업이다.

시장에선 코오롱글로벌의 연이은 패배가 예견된 결과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두 사업장 모두 1차 입찰 유찰 이후 2차 입찰에 코오롱글로벌이 뒤늦게 참여한 곳이다. 조합원들의 마음을 얻기에 시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또한 각 사업지에서 포스코건설과 HDC현산이 오랜 기간 공을 들여온 만큼 수주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었다. 시공능력평가 역시 코오롱글로벌이 16위로 두 건설사(포스코건설 4위·HDC현산 9위)에 비해 낮았다. 일각에선 경쟁력에서 밀리는 코오롱글로벌이 들러리로 참여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무리수라는 우려에도 코오롱글로벌이 사업장에 뛰어든 건 서울 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코오롱글로벌은 그동안 지방 정비사업 시장에서 성과를 쌓아 왔다. 서울에서도 수주 경험이 있지만 가로주택정비사업 등 소규모 사업이 대부분이다. 지난해부터 서울 내 재건축·재개발 사업 물꼬를 트기 위해 수주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대형사와의 대결도 피하지 않았다. 수주 가능성은 없지만 쟁쟁한 대형 건설사들과 경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일반 수요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어서다. 과거 호반건설의 경우 3파전(삼성물산∙DL이앤씨∙호반건설)으로 치렀던 신반포21차 수주전에서 시공권을 확보하지 못했지만 DL이앤씨보다 많은 표를 얻어 강남권에서 호반건설이라는 이름을 각인시켰다. 코오롱글로벌 역시 이 같은 홍보 효과를 기대했다.

하지만 코오롱글로벌의 수주 전략은 오히려 역효과만 낳은 모양새다. 예상보다 저조한 투표수로 홍보 효과는 물 건너 갔고 낮은 인지도만 재확인한 꼴이 됐다. 이 같은 존재감이라면 다음에도 수주를 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시선이 지배적이다. 업계 관계자는 “연이은 수주 실패로 브랜드 이미지 하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며 “이 같은 분위기는 다음 서울 수주전에서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업계에선 수주 전략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다. 코오롱글로벌은 지난해 초에도 동작구 흑석11구역 수주전에 도전했다가 조합원 630명 가운데 12표를 받아 수주에 실패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 차별성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통상 건설사들이 수주를 위해 2~3년 전부터 공을 들이는 데 코오롱글로벌은 급하게 뛰어든 면이 없지 않다”며 “특히 최근에 수주 가능성이 낮은 2차 입찰에 잇따라 참여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코오롱글로벌 관계자는 “정비사업을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확대하기 위해 투자 전략을 본격적으로 짜고 있다”며 “2차 입찰 현장만 골라서 참여한 건 아니었고, 서울에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일단 참여해 인지도를 쌓자는 전략이었다”고 말했다.

올해 1월 취임한 김정일 코오롱글로벌 사장의 실무적인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우려도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김 사장은 필름사업을 맡아오던 코오롱인더스트리 부사장 출신이다. 건설이나 자동차 등 코오롱글로벌 주력 사업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코오롱글로벌 관계자는 “김 사장은 만년 적자사업이던 필름사업부를 단기간에 흑자로 전환시킨 인물이다”며 “그룹에서 전략통으로 불리는 만큼 코오롱글로벌이 성장하는 데 정확한 판단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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