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성 우려 제기될 때마다 제 식구 감싸기 대신 자성 목소리 ···헌법상 명시된 독립적 기구라는 자부심 있어

7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종합상황실에 마련된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7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종합상황실에 마련된 사전투표함 보관장소 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선관위 관계자가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엄민우 기자] 대선은 끝났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를 둘러싼 논란은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커져가는 모습입니다. 확진자 투표 문제로 책임론이 뷸거진 노정희 위원장이 사퇴 요구를 거절하고 6월 지방선거까지 자리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이기 때문입니다.

확진자가 수 십 만 명씩 나오는 초유의 사태임을 감안해도 지난 대선에서의 선관위의 모습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을 오래 기다리게 했다’ 등의 문제는 차라리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근본적으로 ‘직접선거’, ‘비밀투표’라는 선거의 기본 원칙을 훼손시켰다는 비판이 선관위에겐 뼈아픈 부분입니다.

선관위는 사전투표날 확진자들에게 직접 투표함에 투표를 하지 못하게 하고 라면박스 등에 담아 자신들이 옮겨서 투표함에 넣어주겠다고 해 비판을 받았습니다. 비밀 및 직접선거는 투표에 있어 가장 핵심적이고 기본적인 원칙으로 꼽힙니다. 직접 자신의 손으로 투표함에 투표지를 넣는 방법보다 더 확실한 비밀투표는 없습니다. 그래서 온갖 IT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직접 손으로 넣고 손으로 바로 개표하는, 구닥다리처럼 보이는 방식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걸 누군가가 대신 옮겨 넣어준다고 했을 때는 그저 제대로, 그대로 넣어줄 것이란 그 말을 맹목적으로 믿는 방법 외엔 없습니다. 이렇게 단순 신뢰에 의존하게 하는 건 시스템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판입니다. 상당히 투표의 공정성이 취약해질 수 있는 순간이자 단계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일단 본투표 때는 확진자분들도 직접 투표하게 했는데 현재까지 아무 일이 없는 것을 보면, 대체 사전투표에서 왜 대신 넣어주겠다고 했는지 의문인 상황입니다.

이와 더불어 심지어 특정후보가 이미 기표된 봉투를 유권자에게 건넸다가 실수였다고 해명하는 일도 벌어졌으니 당연히 유권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죠. 심지어 ‘코로나19 초기마냥 확진자라고 쉬쉬할 줄 알았나’라는 의심을 갖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노정희 위원장의 행보 및 이력 등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우선 사전선거날인 토요일에 출근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보다 더 지적이 나왔던 것은 노 위원장의 논란 이후 모습이었습니다. 노 위원장은 선거 부실관리 논란과 관련, 지난 7일 출근길 취재진들에게 “본투표 대책마련에 집중하겠다”고 하면서도 대국민사과와 관련한 질문엔 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루만인 8일 대국민 담화로 ‘미흡한 준비’로 ‘불편과 혼란’을 겪은 분들께 사과한다고 했습니다.

사과 이후에도 노 위원장에 대한 사퇴 요구가 계속됐습니다. 비판하는 쪽에선 노 선관위원장은 진보성향 모임인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과거 이재명 공직선거법 재판 당시 주심으로 무죄취지 판결을 내렸다는 점 등을 들어 원활한 선거를 위해 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력이야 달라진 것이 없지만 이번 선거 관련 논란에 이력을 연결시켜 주장한 것이죠. 그러나 최근 노 위원장은 물러나지 않고 최근 6월 지방선거까지 준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습니다.

이 같은 논란을 겪고 있는 선관위에 대해 국민들의 신뢰가 흔들리지 않을지 우려되지만, 그래도 선관위라는 조직은 제식구 감싸기보다는 외부시선 및 선관위의 위상을 신경 쓰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전국 시·도 선관위 및 중앙선관위 소속 상임위원 15명은 건의문을 통해 “상황을 타개하고 대외적 신뢰 회복을 위해 노정희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와 거취 표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내고 나섰습니다.

이전에도 선관위 내부 직원들은 공정성 시비가 일어날 때 자성의 목소리를 낸 바 있습니다. 올해 1월 조해주 상임위원이 임기 만료를 앞두고 사의를 표명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이를 반려해 선관위에 남게 하는 전례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조 위원은 민주당 대선캠프 출신 인물이었죠. 이에 선관위 직원들이 반발하며 집단행동 움직임을 보였고, 결국 문 대통령은 다시 조 위원의 사의를 받아들이는 일이 벌어진 바 있습니다.

다른 정부조직들과 달리 헌법에 중립적 독립적 기구로 명시된 조직이라는 자부심 때문일까요? 선관위 직원들이 얼마나 공정성을 의심하는 시각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극 대처하려 하는지 알 수 있는 모습들입니다. 직원들 의식과 자부심 자체가 내부감시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전히 일부 국민들은 선거의 중립성을 의심하고 심지어 부정을 주장하기도 하는데요. 어쨌든 유권자들로선 선관위라는 조직 자체를 무조건 불신하고 의심하기보다, 독립기구로서 갖고 있는 이들 구성원의 자부심에 대한 신뢰를 보내줄 필요도 있어 보입니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인데 그 선거를 관장하는 최후 보루인 선관위까지 믿기 어려운 나라가 된다면 너무 불행한 일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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