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그라운드 모바일·리니지2M 러시아 매출 상위권
현지 퍼블리셔와 계약···“일방적 파기 어려워”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러시아에서 서비스하고 있는 한국 게임 /그래픽=김은실 디자이너

[시사저널e=이하은 기자] 글로벌 게임사들이 러시아 제재에 동참하고 나서면서 현지에서 매출을 올리고 있는 크래프톤, 엔씨소프트 등 국내 게임사 고민이 깊어졌다. 대부분 국내 게임사는 러시아 기업과 계약을 맺고 서비스를 운영 중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보이콧에 나서기 힘들거란 분석이다.

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렉트로닉아츠(EA)를 비롯해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등 글로벌 게임사들이 러시아 보이콧에 동참했다. 게임 결제를 거부하거나 계정 신규 생성 중단, 서비스 삭제 등의 조치에 나선 것이다. 또한 미하엘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 요청에 러시아 사무실 폐쇄 가능성도 거론됐다. 

◇ 국내 게임사, MMORPG 중심으로 러시아에서 수익

글로벌 게임사가 ‘러시아 보이콧’에 동참하면서 현지에 진출한 국내 게임사 행보도 주목된다. 러시아에 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는 국내 게임사로는 크래프톤, 엔씨소프트, 스마일게이트, 펄어비스 등이 있다. 이들 게임사는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장르를 중심으로 현지에서 인기를 끄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러시아 모바일게임 매출 5위권에 크래프톤과 엔씨소프트가 이름을 올렸다. 모바일 데이터 분석 플랫폼인 앱애니에 따르면 3일 기준 현지 앱스토어 매출 2위에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이, 4위에 ‘리니지2M’이 자리잡았다.

러시아 게임 시장은 PC게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운데 국내 PC 게임도 다수 활약한다. 대한무역투역투자진흥공사 ‘러시아 온라인 게임시장 트렌드 및 전망’에 따르면 20여개 한국 게임이 러시아 이용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일게이트는 ‘로스트아크’의 첫 출시 지역으로 러시아를 선택해 서비스를 이어왔다. 스마일게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러시아, 일본에서만 1000만개 계정을 달성하기도 했다. 

러시아에 서비스를 하고 있는 국내 게임사들은 보이콧 동참 여부에 대해 ‘정해진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크래프톤은 “확인하기 어렵다”고 밝혔고, 스마일게이트 역시 “현재까지 결정된 것은 없다”고 답했다. 

◇ 러시아 기업이 현지 서비스 담당···보이콧 동참 힘들 듯

국내 게임사가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도 명확히 입장을 밝히지 못한 데에는 현지 퍼블리셔와 계약 관계가 얽혀있어서다. 국내 기업은 현지화를 위해 메일러그룹(Mail.RU Group), 이노바시스템즈(Innova Systems), 게임넷(GameNet) 등 러시아 기업과 계약을 맺고 퍼블리싱을 맡겼다. 로스트아크는 메일러그룹이, 아이온은 이노바시스템즈 등이 운영한다. 

배틀그라운드 경우 중국의 텐센트 러시아를 비롯해 글로벌 서비스를 도맡았다. 이런 이유로 데이터 분석 플랫폼에도 해당 게임을 중국 게임으로 표기한다. 크래프톤이 독단적으로 서비스 중단 여부를 결정할 수 없는 구조다.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도의적으로 보이콧에 동참하는 것이 맞지만, 다른 기업과 계약을 맺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계약을 파기하기 힘들다”며 기존 서비스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보이콧에 동참한 글로벌 기업을 보면 개발사보다 퍼블리셔에 가깝고,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라며 “우리와 상황이 다르다”고 덧붙였다.  

사진=트위터
미하엘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부총리가 전세계 게임사를 대상으로 러시아 제재에 동참할 것을 요청했다. /사진=트위터 캡처

그러나 러시아에서 직접 서비스를 하는 국내 게임사도 있다. 크래프톤은 지난해 출시한 ‘배틀그라운드: 뉴스테이트’를 독자적으로 만들고, 글로벌에 직접 서비스했다. 이를 위해 미국, 일본, 태국, 인도, 네덜란드 등 9개의 현지 사업본부를 활용한다고 밝힌 바 있다. 러시아 지역은 네덜란드 사업본부가 담당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엔씨소프트도 지난해 러시아 지역에 출시한 리니지2M을 직접 서비스한다. 러시아 보이콧 동참 계획에 대해 엔씨소프트는 “확정된 바 없다”고 전했다. 

펄어비스 역시 ‘검은사막’을 직접 운영한다. 검은사막은 2015년 최고의 MMORPG에 선정될 정도로 현지에서 호평을 얻었다. 당시 현지 퍼블리셔인 게임넷이 검은사막을 운영했으나 계약 만료에 따라 2018년부터 펄어비스가 직접 서비스를 시작했다. 펄어비스는 서비스 제재 방침과 관련해 “내부에서 여러 사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답했다.

러시아에 대한 글로벌 제재가 강화하면서 게임사 글로벌 진출 전략에 빨간불이 들어온 것이 아니냔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시장좃업체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2021년 러시아 게임시장 규모는 총 23억달러(약 2조7900억원)로 분석했다. 동유럽 국가에서 1위이며 전세계에서 11~12위를 기록했다. 

중국, 미국, 일본 등 주요 게임 시장과 비교해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한국 게임의 인기가 높고, 빠르게 성장하고 있단 점에서 국내 업체들은 해당 시장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왔다.

다만, 국내 게임업체에게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아직까진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작기 때문이다. 또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차 평화회담에 합의한 데 이어 3차 협상이 예정되면서 사태가 진전될 수 있단 희망섞인 예측도 나온다. 오히려 보이콧에 동참하지 않아 여론 악화에 따른 피해가 우려된단 의견도 있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러시아에 대한 국내외 여론이 나쁜 상황”이라며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러시아를 지지한다는 메시지로 비춰질까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