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에너지 등 성장 동력 마련 차원
지배구조 개편 위한 실탄 마련 해석도
4000억원 확보, 모비스 지분 확대 나설 듯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상장 이후 지분 정리로 4000억원의 현금을 확보할 전망이다. / 그래픽=시사저널e DB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현대엔지니어링이 다음 달 공모 청약을 통해 코스피에 입성한다. 예상 시가총액만 6조원으로 모회사 현대건설을 제치고 건설 대장주로 등극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상장 이후 친환경·에너지 사업 역량을 강화해 해외 플랜트와 국내 주택·건설에 초점이 맞춰진 수익 구조를 다변화한다는 계획이다.

아울러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경영승계와 지배 구조 개편 작업도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정 회장은 이번 공모를 통해 4000억원 안팎의 자금을 확보하게 된다. 대량의 실탄을 확보한 만큼 계열사 지분 매입 등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공모 자금, 친환경∙에너지 신사업에 활용 

17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오는 25~26일 수요예측을 통해 공모가를 확정한다. 희망 공모가 밴드는 5만7900~7만5700원으로 공모예정금액은 9264억~1조2112억원에 달한다. 공모가를 확정한 후 다음 달 3~4일 일반청약에 나선다. 예상 시가총액은 최대 6조525억원이다. 현대건설의 시가총액이 5조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단숨에 건설업종 대장주를 차지할 수 있는 규모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1974년 설립된 현대자동차그룹 소속 화공∙전력∙건축∙주택∙인프라·환경∙자산관리사업을 영위 중인 종합건설사다. 엔지니어링 전문업체로 출범했으나 2014년 현대엠코를 흡수합병하면서 지금의 외형을 갖췄다. 최근에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흐름에 맞춰 친환경∙에너지 분야로 사업 보폭을 넓히고 있다. 지난해 초 ESG 가치창출을 위한 원년으로 선포한 뒤 수소 생산과 폐플라스틱∙이산화탄소 자원화 사업∙폐기물 소각∙매립, 초소형 원자로 발전소 건설 등 친환경∙에너지 사업을 추진 중이다.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이번 공모로 조달된 자금은 친환경∙에너지 신사업 분야에 활용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상장을 통해 유치한 공모자금 중 6495억원을 오는 2024년까지 신사업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원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세부적으로는 ▲시설자금(이산화탄소 자원화 구축물 공사∙토지매입) 2500억원 ▲폐기물 소각∙매립장 운영 지분매입 3345억원 ▲차세대초소형원자로 발전소 건설사업 지분매입 650억원 등에 사용된다. 이산화탄소 저감시장(탄소 포집·활용 및 저장기술)은 2030년 8400억달러 규모의 시장 성장이 예상된다. 폐기물 시장 역시 2019년 17조원에서 2025년 24조원 규모 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향후 3년 내 총매출의 10%를 환경∙에너지 분야에서 달성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지난해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현대엔지어링은 플랜트∙인프라 부문 45.5%, 건축∙주택 부문 43.5%로 총매출의 89% 가량을 플랜트∙건설 부분이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11%는 자산관리 및 기타로 구성됐다. 친환경∙에너지 신사업 분야 매출 비중을 높여 현대차그룹 내 환경∙에너지 기업으로서 역할을 극대화한다는 전략이다.

◇정의선 회장 지배 구조 개편 위한 실탄 마련

현대엔지니어링의 상장이 성장 동력 확보 외에 정의선 현대자그룹 회장의 지배 구조 개편과 관련이 깊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로 순환출자구조를 갖춰 나머지 자회사를 지배하는 구조다. 현대차 지분 21.43%를 보유하고 있는 모비스는 그룹 지배 구조의 핵심이다. 다만 정 회장이 소유한 모비스 주식은 0.32%에 불과하다. 안정적인 그룹 승계를 위해선 모비스 지분을 확대해야 한다.

정 회장은 현대엔지니어링 보유 주식을 매각해 모비스 주식 취득에 필요한 실탄을 마련할 것으로 점쳐진다. 이번 공모 주식 1600만주 가운데 1200만주(75%)가 구주매출, 400만주(25%)가 신주모집이다. 구주매출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142만936주), 정 회장(534만 1962주), 현대글로비스(201만3174주), 현대모비스(161만1964주) 등이 보유한 주식이다.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정 회장은 이번 공모를 통해 3092억~4044억원의 자금을 쥘 수 있다. 4000억원을 투입할 경우 정 회장은 모비스 지분 1.5%를 확보하게 된다. 여기에 최근 현대글로비스 지분 매각 대금까지 활용하면 지분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정 회장은 지난 6일 물류 계열사 현대글로비스 지분을 처분해 2009억원의 실탄을 확보했다.

정 회장은 앞서 비슷한 방법으로 모비스 지분을 매입한 적이 있다. 대표이사에 재선임된 2020년 3월 장내에서 모비스 지분 0.32%를 취득했는데, 지분 매입에 약 410억원의 사재를 투입했다. 당시 인수 대금은 2019년 3월 현대오토에버 상장 당시 보유 지분 정리로 확보한 965억원 가운데 일부를 활용했다. 일각에선 모비스 지분 매입 대신 정 명예회장이 보유한 모비스 주식 7.2%에 대한 승계용 세금으로 충당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대엔지니어링의 주요주주는 현대건설(38.62%), 정 회장(11.72%), 현대글로비스(11.67%), 기아자동차(9.35%), 현대모비스(9.35%), 정 명예회장(4.68%) 등이다. 최대주주인 현대건설의 최대주주는 현대차(20.95%)다. 상장 뒤 정 회장 지분율은 4.5%, 정 명예회장이 2.7%로 낮아진다. 현대글로비스와 기아차, 현대모비스도 현대엔지니어링 주식 161만∼201만주를 각각 처분하기로 해 지분율이 내려갈 전망이다.

◇상장 이후 성장선 개선 시급···“신사업 성과 관건” 

현대엔지니어링이 상장 이후 기업 가치를 지속적으로 높이기 위해선 성장성 개선이 시급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실적이 정체기를 걷고 있어서다. 지난해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3141억원으로 전년 동기(2032억원) 대비 54% 증가했지만 평년과 비교하면 성장세가 높지 않다. 2017년 창사이래 처음으로 5000억원을 돌파한 이후 2019년 4081억원으로 줄었고, 2020년에는 2587억원으로 급락했다. 영업이익률 역시 지난해 3분기 5.06%를 기록하며 DL이앤씨(14.33%), 삼성엔지니어링(7.96%), GS건설(7.01%) 등 경쟁사들보다 낮았다.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실적 부진은 해외수주가 정체된 영향이 컸다. 지난해 3분기 말 현대엔지니어링의 매출 비중은 국내 56.4%, 해외 43.6%로 구성돼 있다. 코로나19 대외 변수와 중동의 정세 불안, 국제유가 변동성 등이 맞물리며 수주 확대에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내부거래 관련 위험도 변수로 꼽힌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특수관계자 등 내부거래 매출액은 1조203억원이다. 전체 매출(1조8111억원)의 56%를 차지하는 금액이다. 계열사 거래 규모가 축소되면 매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그룹공사와 분양사업 등을 통한 안정적인 수익구조로 상장 이후 기업가치가 공모가 이상으로 평가될 것으로 보인다”며 “다만 건설업황 특성상 대외 변수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은 풀어야 할 숙제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친환경∙에너지 사업이 성과에 따라 기업 가치도 변동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시사저널e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