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분조위 편면적 구속력 도입 재추진···2000만원 이하 보험금 분쟁에 한정
이재명 후보, SNS에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의지 피력···의료계 즉각 반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사진=연합뉴스

[시사저널e=이기욱 기자] 제 20대 대선이 약 두달 앞으로 다가옴에 따라 금융 관련 공약들도 하나 둘 구체화되고 있다. 야당 측이 선거대책위원회 구성 등으로 내홍을 겪고 있는 가운데 여당 후보가 발빠르게 금융소비자보호에 초점을 맞춘 공약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과거 수 차례 논란이 됐던 ‘편면적 구속력’ 도입도 예고하고 있어 보험업계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동시에 13년째 숙원사업으로 남아있는 ‘실손보험청구 간소화’도 주요 공약 중 하나로 포함돼 있어 법안 처리에 대한 기대감도 함께 자아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열린금융위원회’ 출범···보험분야 5대 공약 제시

10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경제·금융 관련 정책을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이날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직속 국가인재위원회는 금융전문가 최공필 온더디지털금융연구소장을 영입했으며 최근에는 선대위 산하에 ‘열린금융위원회’를 출범시키기도 했다.

열린금융위원회의 첫 활동은 보험소비자 보호공약 발표였다. 이 후보와 열린금융위원회는 ▲고지의무 부담 완화 ▲독립보험대리점(GA) 판매책임 강화 ▲금융분쟁조정결정에 대한 편면적 구속력 부여 ▲실손보험 청구체계 간소화 ▲온라인플랫폼 금융소비자 보호 등을 보험분야 5대 공약으로 제시했다.

이중 현재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 편면적 구속력을 부여하는 공약이다. 편면적 구속력은 민원인이 금감원 분조위의 조정안을 수용할 경우 금융사가 이를 반드시 따라야 하는 제도다. 현 제도상으로는 금융사가 분조위의 결정을 수용하지 않을 경우 그대로 종결되거나 법원에서 1심부터 재판을 받게되지만 편면적 구속력이 도입되면 금융사는 2심부터 재판을 받아야 한다. 분조위 조정안이 1심의 효력을 갖기 때문이다.

편면적 구속력이 금융업계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금융소비자와 금융사 사이에 분쟁이 발생해 소송을 진행할 경우 개인인 소비자 입장에서는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고 불이익을 당해도 소송에 나서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한다. 만약 편면적 구속력을 통해 금감원 분조위가 1심의 절차를 대신할 수 있게 되면 금융소비자들의 부담을 어느정도 완화시킬 수 있다.

이미 여당에서는 지난 2020년 8월 실제 입법까지 시도한 적이 있다. 당시 윤석헌 금감원장은 사모펀드 사태와 관련해 판매사의 책임을 강조하며 ‘편면적 구속력’을 언급했고 이후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10인의 의원들이 관련 내용을 담은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거대 여당에서 추진한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으로 법제화가 이뤄지는데는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재판청구권’ 침해 문제였다. 민간기구인 금감원이 법원의 역할을 일부 대신하게되면 금융사 입장에서는 헌법상 보장되는 재판청구권을 침해받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은성수 당시 금융위원장도 “소비자 보호 측면에서 일견 이해가 되지만 헌법에서 보호하는 재판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이재명 후보 역시 이러한 우려 사항들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편면적 구속력을 기존 입법안보다 제한적으로 ‘2000만원 이하의 보험금 분쟁’에서만 적용되도록 할 방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업계는 여전히 강력하게 반발의 뜻을 표하고 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금감원 분조위는 말 그대로 분쟁의 조정을 돕는 기구”라며 “당사자간의 자율적인 해결이 기본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어 “각 분야 전문가들이 참여하지만 판사가 아니고 분조위는 어디까지나 자문기구기 때문에 그 결정은 권고 사항일뿐”이라며 “이를 악용하는 악성 민원인들도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공약 실행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사진=이재명 후보 페이스북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지난 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공약 실행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다./사진=이재명 후보 페이스북

◇이재명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일석삼조”···의료계 “개인 정보 노출 위험” 반박

반면 이 후보의 또 다른 공약 중 하나인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법안은 보험업계로부터 크게 환영을 받고 있다. 지난해 보험업계에서는 실손보험청구 간소화가 논의되기 시작한 2009년 이후 12년만에 법제화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들이 다수 제기됐다. 금융위원회가 지난해 5대 중점과제 중 하나로 실손보험청구 간소화를 선쟁했을 뿐만아니라 여야 의원들 다수가 관련 법안을 발의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전과 마찬가지로 의료계의 거센 반대로 논의가 지연됐고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등 다른 이슈들에 밀려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실손보험청구 간소화 법안이 통과되면 보험 가입자는 병·의원 등에 실손보험금 청구 관련 서류 전송을 요청할 수 있게 된다. 복잡한 서류 증빙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게돼 소비자 입장에서도 편의성이 증대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후보는 자신의 SNS에도 관련 내용을 따로 게재하며 공약 실행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지난 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작년 5월 소비자단체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가입자의 47.2%가 실손보험 청구 포기를 경험한 바 있다”며 “보험 가입자인 국민이 위임하면 병·의원이 바로 청구하는 ‘청구 절차 간소화’를 추진하겠다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민의 권리도 지키고, 병원은 불필요한 서류발급을 안해도 되며 보험사 역시 행정부담이 대폭 줄어든다”며 “즉, 일석삼조다”고 강조했다. 그는 “‘실손보험 청구 간편화’로 보험소비자인 국민이 꼬박꼬박 납부하는 보험료에 맞게 혜택을 간편하게 누릴 수 있도록 바꾸겠다”고 밝혔다.

보험사들이 십여년동안 꾸준히 실손보험청구 간소화를 주장해온 가장 큰 이유는 보험금 청구 과정에서 확보되는 ‘보건의료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보험 상품, 수익 모델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고객들의 보험금 청구가 늘어나 수익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지만 데이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미래 가치가 더욱 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손보업계 관계자는 “현재는 보험금 청구 과정이 귀찮아 소액의 경우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고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며 “만약 청구 과정 간소화가 이뤄질 경우 소액 보험금에 지출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소액이라고 해도 그 수가 많아질 경우 단기적으로 수익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보험 상품을 만들거나 기존 상품들의 보장 범위 등을 효율적으로 개선하는 등 관련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입법이 하루 빨리 이뤄지길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어차피 실손보험의 경우 이미 구조상 적자가 누적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다른 활용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의료계 측은 이번에도 즉각 반대 의사를 밝히고 있어 첨예한 갈등이 반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대한병원의사협의회는 10일 성명서를 통해 “건강보험 청구 및 심사 제도의 문제점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발언”이라며 “국민 입장에서는 청구 과정에서 알리기 싫은 개인 정보가 항상 보험사에 노출되는 문제점이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진정 국민을 위하고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이 정상화되기 위해 어떠한 정책이 필요한지 충분히 숙고해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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