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정책 정책 권한 집중···기재부 관료 권력 비대해졌다는 지적
코로나 상황서 정책 대응 미흡 진단···“예산 편성 기능 손질 우선”

[시사저널e=최성근 기자] 경제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재정부가 주어진 권한에 비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어 개혁이 필요하단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재부의 예산 기능을 분리하거나 부처를 아예 없애야 한단 주장도 나오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기재부에 집중된 예산편성기능을 손보는 데서 해법을 찾아나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28일 정부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기재부는 2008년 이명박 정부가 경제정책조정역량 강화와 재정기능 일원화를 위해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통합해 설립한 이후 재정과 경제, 공공정책 총괄부서 역할을 지금까지 맡고 있다. 현재 1장관, 2차관, 1차관보, 3실(기조실·세제실·예산실), 1대변인, 11개국, 103개과로 구성돼 있으며 1000명이 넘는 인원이 근무하는 거대 조직이다. 행정안전부를 제외하고 본부 인력이 가장 많은 부처로 청와대 조직의 두 배, 통일부나 여성부와 비교하면 4배가 넘는 규모다. 

기재부는 경제정책에 있어 핵심적인 정책 권한을 쥐고 있다. 이른바 ‘경제 4권’에서 금융을 제외한 경제정책 수립·조정, 예산, 세제 등 3권을 갖고 있다. 특히 기재부 예산실은 기재부 내에서도 ‘핵심 부처’로 손꼽힌다. 국가 예산 운용에 대한 결정은 물론 각 부처와 관련된 예산에서 부터 전체 나라살림의 윤곽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기재부 관련 정부 조직은 김영삼 정부 당시 처음으로 일원화됐으나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재경부와 예산처로 이원화됐다. 이후 이명박 정부 때 다시 기재부로 일원화됐다. 효율성 강화를 위한 결정이었으나 기획, 예산과 경제 정책, 재정집행(세제, 국고, 재정관리) 등 여러 기능을 한 조직에서 맡으면서 정부 조직 내 관료권력이 너무 커졌단 진단이 나온다.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기획재정부의 나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정책 토론회에서는 각계 전문가들이 참석해 기재부의 문제점과 개혁 방안을 제시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지금 기재부는 갖고 있는 막강한 권한과 자원에 비해 이것들을 사용하는 일은 번번히 실패하고 있다”며 “코로나 시기 기재부가 정책을 평가하면서 ‘가성비 좋게 한 것 같다’고 했는데 이건 국가 채무가 상대적으로 늘지 않았단 자화자찬이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채무가 늘지 않은 것은 고스란히 서민들 빚으로 늘어나면서 가계부채 위기를 맞는 결과를 초래했다”며 “벼랑끝 위기에 서있는 자영업자, 서민 도와주는 일엔 인색하면서 대기업에 세제를 감면하는 일엔 나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기재부의 기획예산 기능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수행돼야 하는데 경제 정책 기능은 단기 실적 관리에 초점을 맞추기 쉽단 분석이다. 이로 인해 기획 예산 기능에 있어 요구되는 중장기적 관점이 간과되기 쉽단 우려가 나온다. 

나원준 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는 “기재부는 그동안 재정건전성을 강조했지만 사실 보수적 재정 운영은 큰 경제적 손실로 이어져 왔다”며 “사회나 국가가 해야할 일을 하지 않고 재정을 아껴오면서 경제적으로도 엉터리 성과를 내왔다”고 말했다. 가난한 집에서 으리으리한 저택을 보유하고 있는 셈이란 지적이다. 이어 “바람직한 소비를 많이 할 수준으로 접근해 가는 게 좋은데 이를 위해 내수 기반을 확장해야 한다”며 “적절한 부채는 우리 경제의 비효율성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나 교수는 “기재부가 단기채무 관리, 외국인 보유 비중, 조달 금리 등에선 잘하고 있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민간에서 겪는 고통을 분담하지 않는 등 대응이 미흡했다”며 “재정 운영에 있어 부채의 실효금리 부담 크기를 고려하는 규범을 정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획재정부의 나라, 어떻게 바꿀것인가'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획재정부의 나라, 어떻게 바꿀것인가' 정책 토론회가 열렸다. / 사진=최성근 기자

기재부는 중앙예산기관으로서 각 부처 예산의 취합, 조정, 통제권과 총액설정권, 심의권을 갖고 있다. 인적 네트워크도 막강해 타부처에 대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단 분석이다. 물론 예산에 있어 형식적으로는 대통령이 승인권을 갖고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예산실 주도의 예산편성이 이어지고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 관료들이 과도한 권한을 행사하기 쉽게 제도가 운영되고 있단 지적이 있다. 

일각에선 기재부를 해체해야 한단 주장을 내놓지만 전문가들은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진단했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기재부 해체론에 대해 가장 좋아할 곳은 기재부이다. 조직이 드디어 커지고 인사적체가 해소된다며 웃고 있을 것”이라며 “기재부 해체를 통해 기재부에게 가장 큰 선물을 주는 게 바람직한지는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의 기능을 어떤식으로 나누더라도 시너지 효과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단 분석이다. 부서 기능을 형식적으로 떼었다 붙였다 하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없단 것이다.

총액배분예산제도가 해법이 될 수 있단 설명이다. 이 제도는 중앙예산기관이 총 지출규모와 분야별 부처별 지출규모를 확정한 뒤 각 부처가 담당 사업별 예산을 요구하고 중앙예산기관과의 협의와 조정을 거쳐 각 사업별 예산규모를 확정하는 것이다. 

미국은 1939년 재무부에서 예산국을 대통령 직속으로 옮기면서 관리예산처(OMB)가 예산편성을 관장하고 있다. OMB는 예산편성 및 연방정부 재정사업 계획수립으로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OMB 조직을 청와대에 설치하는 방향 등이 대안으로 검토될 수 있다.

이 위원은 “기재부 조직을 바꾸는 것은 어떻게 바꾸든 장단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조직 개혁의 핵심은 탑다운(총액배분예산) 제도를 실질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재부 직원들의 자기 확신을 깰 수 있는 제도적 보완책도 마련해야 한단 지적이다. 이 위원은 “기재부 인사들은 기술적 전문성과 함께 기획을 했던 사람들이라 정무적 판단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인맥은 말할 것도 없다”며 “가장 큰 힘은 자기 확신이다. 자기 양심을 따라 어떤 정책을 하면 출세할 수 있는 구조”라고 말했다. 기재부 관료는 기재부가 갖고 있는 논리를 지킬수록 승진과 출세가 보장되는 구조란 설명이다.
 
공공부문 최고 의결기관인 공공기관운영위원회도 현재 사실상 기재부에서 통제하고 있다. 기재부는 여러 경제 관련 공기업, 공공기관의 주무부처이면서 동시에 전체 공공기관 관리도 맡고 있어 역할이 중복되며 경제 정책 관점에서 사회정책을 바라보게 되는 문제가 있다. 나 교수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기재부 역할을 축소시키고 노동계와 시민사회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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